“의대 증원, 무조건 ‘0명’… 면허정지 빨리 해달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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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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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사직 전공의 전화 인터뷰
“면허정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아”
“의사 악마화, 여론 나쁠 수밖에”
의과대학 정원 확대 이슈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 사직 전공의가 “의대 증원은 ‘0명’ 말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오히려 빨리 면허정지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공의는 정부가 의사를 계속해 ‘악마화’하고 있으며, 국민들로부터도 ‘의사가 환자를 떠났다’고 매도당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전체 전공의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현 상황에 대한 사직 전공의로서의 생각을 말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8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인 소개를 해달라.
“수도권 의대를 졸업하고 부속 병원에서 전공의 1년차 생활을 하다 사직한 20대 후반 의사다.”

-집단사직이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었다. 전공의들 분위기가 어떤가.
“처음에는 금방 해결될 것 같고, ‘누군가 중재하겠지’ 하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정부에서 강압적인, 불통의 태도로 나오고 있어서 다들 지친 분위기다. 초반에는 총선 전에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요새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사직 전공의들이 생활고 때문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행을 다닌다는 얘기도 있다.
“쿠팡 배달 아르바이트 등 단기직은 몇 번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여행을 가는 경우도 있지만 드문 것 같고, 대부분 본인 과(科)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헬스를 하거나 건강을 위해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2000명 증원 백지화와 보건복지부 차관 파면 등을 대화 조건으로 내걸었는데.
“복지부 차관에 대한 얘기는 주변에서 상당히 많다. ‘의새’라는 표현도 그렇고, 강압적으로 얘기하고 (의사를) 깔보듯이 얘기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공무원으로서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대다수다. 다만 현실적으로 파면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등에서 ‘1000명 증원’이면 논의해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는데.
“저희 입장과 전혀 다른 사실이고, 전혀 합의된 게 없이 개별적으로 얘기한 것이다. 전공의 동기들 사이에서 상당히 불만이 많다. 대표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 대표성이 있는 것처럼 행동을 하고 불필요한 이야기만 하고 다니면서 욕도 많이 먹는다. 그래서 저희 전공의들이 많이 연락해서 질책하는 상황이다.”

-가령 의협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1000명 증원’ 합의를 한다면 어떤가.
“(증원 규모를) 1000명으로 한다든가, 이런 것은 애초에 생각도 안 하고 있다. 그냥 ‘0명’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얘기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주변을 봤을 때 증원 규모는 ‘무조건 0명이어야 한다’ 이런 분위기인가.
“그렇다.”

-정부는 원론적으로 복귀하지 않는 이상 겸직 금지와 면허정지를 원칙적으로 한다는 입장이다. 현실적으로 두려운 감정도 들 것 같다.
“(정부가) 약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 게, 면허 정지나 취소에 대해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이런 행정처분을 좀 빨리 진행해주기를 다들 원하는 분위기다. 질질 끄는 게 싫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면허정지를 하게 되면 어쨌든 처분이 나오는 것이니, 소송을 한다든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미래에 대한 계획을 그린다든가 할 수 있어서 훨씬 좋다고 본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그간 변호사 세무사 등 전문직종들도 증원을 해왔고, 의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변호사 등 직종들은 정해진 수가 체계가 없다. 수요-공급에 있어서 정부가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는데 공급을 마음대로 늘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해결돼도 많은 전공의들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이미 ‘내과에서 몇 명은 안 돌아간다더라’ 하는 얘기가 병원에서 나오고 있다. 인턴같은 경우는 비율로 따지자면 15~20% 정도는 이미 ‘절대 안 돌아간다’고 얘기를 해놓은 상태다.”

-‘의사가 환자를 떠나서는 안 됐다’는 여론 목소리가 큰 게 사실이다.
“사실 (환자들이) 불필요하게 대학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다. 국민 의식이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체계 부분에 있어서 국민들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면 오히려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만 이번 일로 인해 수술이 연기되거나 취소된 경우가 아주 드물게는 있는 것 같은데 그런 피해를 보신 분들에 대해서는 사실 조금 안타깝고 걱정이 된다. 그런데 국민들께서도 잘 생각해보셔야 하는 게, 정말 중요한 치료나 수술은 전공의가 하는 게 아니다. 전공의들은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육을 받는 사람으로 인식해줬으면 좋겠다.

핵심적인 수술은 교수들이 다 할 수 있다.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 오는 분들은 교수님들을 보면 된다. 실제로도 그러고 있는데 의사가 환자를 떠났다는 얘기는 말이 안 된다. 전공의는 교육생 신분인데 국민들께서 제대로 인지를 잘 못 하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론이 이 정도로 악화된 주요 원인은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정부가) 의료 개혁을 하는 것이 마치 무조건 필수적인 일인 것처럼 강조하고, 의사를 악마로 몰아가는 ‘악마화’ 같은 것들이 너무 팽배해 있기 때문에 여론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의사들이 ‘막말’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의사 커뮤니티를 보거나 저희들끼리 얘기를 하면, (막말 당사자에 대해) ‘왜 그런 얘기를 하냐’면서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대다수다. 개인의 문제를 집단의 문제로 확대하는 것에 동의를 못 하겠다. 개인의 문제를 갖고 전체를 매도하는 게 말이 안 된다. 대리수술의 경우에도 그 의사를 매도해야 하는데, 의사 전체를 매도하는 게 말이 안 된다.”

-군의관과 미이탈 전공의 등의 실명이 담긴 ‘블랙리스트’가 떠돌기도 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굳이 리스트를 만든다는 건 저는 들어본 적 없다. 다만 미이탈 전공의들의 경우에는, 집단사직에 참여하지 않을 거면 그냥 의견을 말하면 되는 것인데 ‘나는 피해 보기 싫다’는 식으로 얘기해서 마찰을 빚은 사람도 있었다. 물론 이걸 리스트화시키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실이 ‘2000명 증원’ 방침은 계속 고수하고 있다.
“정부가 그렇게 얘기를 할수록 저희는 대화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생각을 한다. 태도를 안 바꾸면서 대화만 주장하는 것은 총선을 위한 전략이나 대통령 본인을 위한 전략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사태는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고 어떤 식으로 중재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의료계도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려고만 하지 말고 합리적인 주장을 펼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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