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모를 뿐”…의사단체, 대통령 담화에 날선 비판

기사승인 2024-04-02 06: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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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 모를 뿐”…의사단체, 대통령 담화에 날선 비판
1일 오전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의미 없어”

“물러섬 없이 거짓 주장”
“한국 의료 미래가 걱정”

전공의 집단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가 7주차에 접어든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면 전환을 꾀했지만 의료계 안에선 불이 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들은 윤 대통령의 담화를 일제히 비판하며 강한 불만감을 드러냈고, 의정 갈등을 풀어갈 실마리는 더욱 찾기 어려워졌다.

지난 1일 의사단체들은 이날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과대학 입학 정원 2000명 증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증원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데 대해 “입장을 밝힐 필요가 없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당선인은 “‘입장이 없음’이 공식 입장”이라며 “그 이유조차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논평하고 싶지 않다”고 일갈했다. 김성근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정례브리핑에서 “대통령이 담화문에서 밝힌 내용은 정부가 이전에 발표했던 내용들의 총합에 그친다”라고 정리했다.

윤 대통령이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통일된 의대 증원 숫자를 가져오면 증원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의료계는 ‘증원 백지화’가 대화의 전제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00명이라는 숫자가 맞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꾸준히 얘기했지만 오늘 대통령 담화문을 보면 숫자에 대한 후퇴가 없다”며 “정부가 국민, 의료계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 것을 제안했는데 2000명 증원을 정해놓은 상태로 여러 단체가 모여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방재승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위원장은 “한국 의료의 미래가 걱정”이라고 비판했다. 방 위원장은 “이번 담화문을 통해 정부가 현 의료 사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한국 의료의 미래가 걱정이다. 정부와 대화가 안 되니 기존 방침을 이어간다”고 전했다.

앞서 서울대 의대 등 20개 대학의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모인 전의비는 이달부터 24시간 연속근무 후 다음날 주간 근무를 서지 않기로 결정했다. 중증·응급환자 진료를 제외한 외래진료와 수술은 대학별로 조정하기로 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의 언론 대응 배제도 요구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통령은 예상했던 대로 물러섬이 없다”며 “팩트(사실)마저 또 거짓 주장을 했다”고 비난했다. 노 전 회장은 “통계 중에서 유리하고 필요한 것만 쏙쏙 빼서 말하고 불리한 건 모조리 빼놓았다”며 “편향된 정보의 제공, 그것이 권력의 횡포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통령을 향해 “당신의 말씀대로 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사들의 면허를 정지해야 하고 그 때문에 의료가 마비된다면 당신이 말하는 정치가 잘못된 것”이라며 “온 국민이 알고, 당신만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 정지와 관련해 다시 강공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내비친 점도 의사들의 반발을 샀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뒤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들에게 의사면허를 3개월간 취소하겠단 내용의 사전통지서를 발송한 상태다. 의료계 일각에선 이날 대통령 발표로 의정 갈등은 봉합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목소리도 나온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이번 담화문으로 의사들이 의사를 늘리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줄 수 있어 충격적이고 실망스럽다”면서 “환자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의사까지 악마화시키고 돈벌레처럼 여겨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이어 “의정 갈등이 봉합된다 하더라도 그동안 쌓아온 의사와 환자 간 신뢰와 믿음은 이미 깨질 대로 깨진 상태”라며 “의사가 검사나 추가 진료를 권유하면 환자가 돈 때문이라고 여기고 거부할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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