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 응급환자 보는 ‘동네의원’ 오는 9월 2곳 개원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 “응급실 과밀화 해소 전략”

우리나라 응급의료 자체가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응급의료 자원은 부족하고, 제대로 된 응급의료체계가 없다보니 경증부터 중증까지 밀려드는 환자들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은 말 그대로 포화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응급실 과밀화로 병상이 부족해 구급차를 타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기도 한다. 병상을 찾지 못해 구급차에서 출산하거나 응급실 바닥에서 투석하는 일도 벌어진다.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구급차 안에서 심폐소생술을 받는 환자도 있다.

취약한 응급의료체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심화됐지만 2년이 넘도록 정부 차원의 해결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결국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는 고질적인 응급실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경증 응급환자를 동네의원에서 직접 진료하는 ‘급성기클리닉’(urgent care clinic)을 국내에도 적용해보기로 한 것이다.

급성기클리닉은 경증 응급환자들을 위한 1차 의료기관으로, 미국에서 처음 선보였다. 응급실 진입장벽이 높다보니 개인 병원과 대형병원 응급실의 중간단계 클리닉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도입됐다.

응급실 외에 야간이나 주말에 방문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급성기클리닉을 통해 응급실 과밀화를 막고, 응급의료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응급의학의사회가 본격적인 인큐베이팅을 시작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올해 하반기 수도권 내 365일 운영하는 급성기클리닉 2개소 개원을 목표로 시범사업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운영 효율화를 고려해 24시간 운영보다는 오전부터 응급실 과밀이 가장 심한 저녁 시간대를 커버하고, 운영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통증클리닉’을 운영하면서 경증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모델이다.

급성기클리닉이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한림대성심병원)을 만나 직접 들어봤다.

- 우리나라 응급실의 고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급성기클리닉’을 제시했다. 급성기클리닉은 무엇인지, 또 이 시범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응급실을 선택해 갈 수 있다. 환자의 진료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보니 응급실은 환자들로 붐빌 수밖에 없다. 1년에 환자 1,000만명 정도가 응급실을 찾는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800만명에 이르는 환자들로 응급실은 만원이다. 이 중 중증 환자는 50% 정도에 불과하다.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이 과밀화의 원인이 된 셈이다.

응급실 과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증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의료기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해결책으로 미국의 ‘급성기클리닉’이 떠올랐다. 미국의 경우 9,000여 곳의 급성기클리닉이 있다. 대도시 골목마다 ‘스타벅스’ 만큼 많이 있는 게 급성기클리닉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경우는 대형병원 응급실로 가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단순 염좌나 복통, 발열 등 경증 질환 진료를 급성기클리닉이 맡고 있다. 이처럼 경증 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동네의원이 생긴다면 굳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며 진료를 보지 않아도 되니 응급실 과밀화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응급의학과는 개원이 쉽지 않다. 급성기클리닉 도입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관심도 클 것 같다.

사실 응급실에서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낮은 수가 때문에 적은 인력으로 응급실을 운영하다보니 한 달에 최소 50~60시간은 야간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 보통 전문의 취득 후 15년차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전성기인데,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15년차가 되면 탈진해 쓰러진다. 연차별 급여 차이도 크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도 달리니 응급실을 포기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데 현재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결국 대안이 필요했다.

- 통증클리닉 모델을 급성기클리닉에 접목시킨 이유가 궁금하다.

급성기클리닉을 국내 도입했을 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생각을 해보니 수가 때문에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개원을 해서 환자를 보게 되면 전문의 수가가 없어 일반진료 수가밖에 받지 못한다. 결국 현행 수가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결국 수익적으로 자생력을 갖기 위해 통증클리닉을 동시 운영하는 형태의 급성기클리닉 모델을 구축했다.

- 올해 하반기 개원하는 급성기클리닉은 어느 정도 준비 됐나.

응급의학과는 응급실을 중심으로 일 할 수 있게 수련하기 때문에 개업을 하려면 새롭게 배워야 하는 부분이 많다. 진료비 청구나 보건소 신고 등 모든 일을 개원의가 해야 하기 때문에 별도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이에 의사회에서 급성기클리닉 개원을 원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을 대상으로 6개월 정도 교육을 받으면 개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현재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이 급성기클리닉 네트워크인 EM365를 운영하기 위해 교육받고 있다. 개원 관련 교육은 판교연세의원 신형진 원장이 맡고 있다. 이들은 오는 9월 수도권 2곳에 EM365를 개원할 예정이다.

- 궁극적으로는 급성기클리닉에서 경증 응급환자를 진료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수가가 필요해 보인다.

응급실로 환자 내원 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진료하면 ‘응급의학과 전문의 진찰료’가 가산된다. 급성기클리닉이 응급실로 쏠린 응급환자들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급성기클리닉에서 경증 응급환자들을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진료하면 마찬가지로 수가를 책정해줘야 한다. 수가 부분이 해결된다면 통증환자 등 다른 환자들을 보지 않고 응급 환자들만 진료해도 자생력을 갖고 뻗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가 문제가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응급의학과 전문의 진찰료는 건강보험 수가가 아닌 응급의료관리료에 두고 있기 때문에 수가를 건드리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 통증클리닉 모델 외에 구상하고 있는 다른 모델도 있나.

수익성을 담보하면서 응급환자를 같이 볼 수 있는 통증클리닉 모델이 가장 기본적인 개업 형태다. 이외에 요양병원 모델도 구상 중이다. 요양병원을 개업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도 꽤 많다. 요양병원은 고령의 만성질환자가 많은데, 요양병원의 마지막 단계는 결국 사망이다. 요양병원에서 중환자 케어를 잘 하게 되면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들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의료부담도 줄어들게 된다.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응급의학과다. 중증환자를 케어 할 수 있는 요양병원 모델도 준비 중이다. 암 환자들도 건강상태가 악화되면 응급실로 온다. 암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요양병원 면역치료 모델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또 고압산소 주입 치료를 할 수 있는 고압치료클리닉도 구상 중이다.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코로나19 확진자 해소를 위한 대면 치료의원 및 코로나19 후유증클리닉도 운영할 예정이다. 코로나19 확진자 대면치료 클리닉의 경우 기존 병원시설을 이용해 업무시간 후 예약제로 수액치료와 기타 대증치료, 엑스레이 및 혈액검사 등을 제공함으로써 확진 초기 환자의 경중을 파악하고 초기치료로 악화를 예방하면 응급실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추후 확진자 감소에 따라 롱코비드 후유증·치료센터로 전환해 운영할 수 있다.

- 우리나라에서 급성기클리닉이 응급의료체계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뿌리 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다양한 모델을 접목시킨 급성기클리닉을 개원해 성공하는 것 자체는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수가다. 미국과 같은 급성기클리닉이 국내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전문성을 수가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미국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으면 30만원이고 급성기클리닉을 가면 15만~20만원 정도가 든다. 반면 우리나라는 초진료가 1만7,000원으로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미국에서 환자 20명을 볼 때 우리는 200명을 봐야 하는데 이런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고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교통사고가 나면 당연히 대학병원으로 가야 하는 줄 안다. 사실 조금 찢어져 외과 의원으로 가면 큰 병원으로 보내기도 한다. 30분 들여 찢어진 부분을 봉합해도 4,000원 정도 밖에 받을 수 없으니 차라리 더 많은 환자를 보는 게 낫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경증 응급환자들을 급성기클리닉에서 본다면 응급실 과밀화 문제 해소는 물론 응급의료전달체계도 강화할 수 있다. 또 환자들은 적절한 치료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한 보상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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