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의대 증원, 숫자놀음 할 때가 아니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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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01 06:59  |  수정 2023-11-01 06:59  |  발행일 2023-11-01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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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동부지역본부장

정부가 2006년부터 3천58명으로 묶여 있던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 대입부터 순차적으로 증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상경 진료 한 해 71만명 환자촌이 생겼다" "의사 늘려야 필수 의료까지 낙수효과"라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면서 의대 정원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서울 원정 진료가 없어질까. 15년 전 어머니의 항암치료를 위해 삼성서울병원 옆에 집을 얻어 6개월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형제들이 교대로 서울에 올라가 간호를 했다. 대구에 병원이 없어서도, 의사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더 유명하고 더 능력 있는 의사가 있다면 서울이 아니라 미국, 아니 저 우주까지라도 가는 것이 환자와 보호자의 심정이다. 상경 진료 71만명이 치료해 줄 의사가 없어서 서울을 찾는 것이 아니다. 더 훌륭한 의사를 찾아,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더 나은 학교를 찾아 사람들은 서울로 몰려든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필수 의료 공백이 없어질까. 의사 수를 늘려 놓으면 낙수효과로 필수 의료 분야와 지방에 근무하는 의사도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단순하고 무지하다. 의대 정원을 늘렸으나 오히려 의사의 도시 집중 현상이 심해져 실패하고 다시 의대 정원 감축에 들어간 일본의 사례가 이를 말해준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이 대기업이 성장하면 대기업과 연관된 중소기업이 성장하고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창출되어 서민 경제도 좋아진다는 낙수효과는 이미 그 탄생지인 경제 분야에서조차 부정당하고 있다.

전문의 수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응급수술 없고, 밤 당직 없고, 의료 소송 없는 분야에 의사가 쏠리고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항상 미달이다. 의대 졸업생 10~20%는 전문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피부과와 성형외과 의원으로 빠져나간다. 이것이 의사 수를 늘려서 해결될 문제일까. 의사 수를 도대체 얼마나 늘려야 이를 해소할 수 있을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한국 의료 제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성서산단 염색공장 3교대 일자리는 늘 구인난에 허덕인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필수 의료 수가 개선, 높은 업무 강도, 진료 결과에 대한 과도한 민·형사 책임, 비급여 분야 의사와의 임금 격차 등 복합적인 원인은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이 의사 수나 늘리겠다는 정부는 무능력할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것보다 서울행 KTX를 타지 않아도 될 만큼 지역 의료 수준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 지방과 서울의 의료격차 해소, 수도권 쏠림 해소, 국가 균형 발전과 같은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의대 정원 확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속도를 제한하고, 도로를 개선하고, 신호 체계를 점검하고, 운전자와 보행자의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 단순히 차량 숫자를 줄이는 게 해결책일 순 없지 않은가.

"의대 정원 증원에 앞서 의사 부족 현상에 대한 정확한 원인 및 인과관계 해석이 필수다. 의대 정원 증가는 대학과 병원 운영의 자율성, 교육 환경, 보건복지 정책과 피폐한 지역 생활 인프라 회복 등과 맞물려 있다"는 거점국립대학 교수연합회의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500명, 1천명, 3천명, 선심 쓰듯 숫자놀음이나 할 때가 아니다. 필수 의료·지역의료를 지원하는 과감한 제도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은경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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