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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범죄에 ‘사법입원제’ 수면 위...재탕 대책에 실효성은 '글쎄’

이재혁 기자 / 기사승인 : 2023-08-28 08: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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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에서도 추진됐으나 임기만료폐기
사법부, 인력 비롯한 자원 확보 전제 의견 여전
인프라 부족 및 인권 침해 우려도 넘어서야
▲ 최근 잇단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에 사법입원제 도입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진=DB)

 

[메디컬투데이=이재혁 기자] 최근 잇단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에 사법입원제 도입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정부는 사법입원제를 범정부 대책으로 발표하며 힘을 싣는 모양이지만 이미 과거에도 한 차례 도입이 무산된 바 있어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 지는 미지수다.

지난 17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법무부는 판사가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판단하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도 도입 의지를 표명했다. 조 장관은 해외의 사법입원제 사례를 참고해 비자의 입원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관계부처와 입원제도 개선 TF를 구성했다고 전했다.

사법입원제는 정신의학적 판단만으로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사법기관이 환자의 상태 및 가족의 지지환경을 고려해 입원 적절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현재 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강제입원)에 대해서는 보호의무자와 의사가 책임을 지고 있는데, 이를 국가가 책임지도록 해서 환자 인권을 보호하고 가족 부담을 덜어주며 의료인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앞서 지난 2018년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 2019년 안인득 방화살인 사건을 계기로 사법입원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탄 바 있다.

제20대 국회에서는 자유한국당 김재경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윤일규 의원이 각각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들 법안은 공통적으로 보호의무자 제도 및 의무를 폐지하고, 정신질환자의 입원 적합성 심사를 가정법원이 전담케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중 김재경 의원안 검토보고서를 살펴보면 복지부, 대법원, 경기도, 정신질환 당사자 단체, 유관 학회는 모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거나 수용 곤란 등 반대 의견을 냈다.

당시 대법원은 “판사 1인당 입원심사 사건이 많을 경우 심리 자체가 형식화될 우려가 있으며, 판사, 재판보조인력, 보조인, 호송인력 등 인적자원 및 물적자원 확보를 위한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더해 경기도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이후 현재도 예산·인력 등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로, 다시 입원제도를 전반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정신질환 당사자 단체 ‘파도손’은 개정안과 관련해 논의‧토론회‧공청회가 개최된 적 없음을 지적하며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신건강사회복지학회, 정신건강임상심리학회는 사법입원에 대한 연구나 구체적 대안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몇몇 사건을 계기로 법개정을 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복지부는 법원 등 관계 부처와의 협의 및 정신질환 당사자 의견 등을 충분히 듣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결국 개정안들은 20대 국회 임기를 끝으로 임기만료폐기됐고 흐지부지 넘어갔다. 잇단 묻지마 흉기 난동에 사법입원제 도입 논의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지난 18일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여야 위원들은 정부가 꺼내 든 사법입원제 도입 카드에 대해 우려 섞인 지적을 쏟아냈다. 이번 정부의 발표도 말뿐인 ‘공(空)언’이 되진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은 “사법입원제나 외래치료명령제와 같은 제도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현재 국내 정신질환자 치료와 관련된 인프라가 상당히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여전한 인프라 부족을 지적했다.

최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18년 403개소였던 정신건강의학병원은 391개로 감소했고 병상도 많이 줄어든 상태다. 더욱이 병상 가동률은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99%, 종합병원의 경우 95%로 사실상 당일 입원이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권역정신응급센터 20개소 중 응급병상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12개 밖에 안돼 이를 조속히 확충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정부는)사법입원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안인득 사건때도 똑같이 했던 것”이라며 “너무 쉽게 사법입원제도로 밀어 놓고 사법부는 준비가 안 돼 있고의 반복”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남 의원은 과거에도 사법입원제도와 관련해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을 우려가 존재했었던 점을 언급하며 행정입원 체계를 강화하는 등 국가책임제를 강화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같은 당 신현영 의원은 “사법입원제도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려면 정신과 전문의들의 적극적인 컨설팅, 판사들의 전문성 강화와 같은 부분, 그리고 결국에는 입원 치료 대상자에 대한 병상‧병동 인프라와 의료 인력의 확보 등이 모두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제반을 준비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느냐는 신 의원의 질의에 조규홍 장관은 “현행 비자의 입원제도의 활성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사법입원제 도입을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 도입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사법입원 제도에 관해서는 사법부에서 인력을 비롯해 여러 가지 자원의 확보가 필요하단 말을 하고 있다”며 “빠르게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메디컬투데이 이재혁 기자(dlwogur93@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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