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레지던트 안한 일반醫도 86%가 “피부과 진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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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과 몰리는 일반의원]
전문의 이어 비필수과목 쏠림 심각
일반醫 개원은 5년간 979곳 ‘러시’

필수의료 인력 부족이 심각한 가운데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 사이에서도 피부과 등 ‘비필수’ 과목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의란 의대 졸업 이후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치지 않아 내과, 외과와 같은 세부 전공을 받지 않은 의사를 뜻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일반의가 새로 개원한 의원(일반 의원)은 총 979곳이었다. 이 중 86%에 해당하는 843곳이 ‘피부과 진료를 본다’고 신고했다. 1차 의료(동네 의원급)에서 피부과는 미용 시술 위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대표적인 ‘비필수 과목’으로 꼽힌다.

전문의 자격을 따겠다는 의대 졸업생은 점점 줄고 있다. 2013년 3414명이던 전공의 1년 차 모집인원은 지난해 2877명으로, 537명이나 줄었다. 전문가들은 필수의료의 ‘1차 관문’ 역할을 해야 할 동네 병원들이 비필수, 미용 분야에만 쏠리면서 필수의료 공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레지던트 수련 도움 안돼”… 9년새 537명 줄어 필수의료 적신호


의대 졸업생 일반의 개원 확산
86% 피부과, 42%는 성형에 몰려
산부인과 6%, 소아과 23% 그쳐
동네의원 필수의료 확충에 경고등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A의원은 보톡스, 필러, 리프팅 등 피부 미용 시술 위주로 진료를 보는 곳이다. 빌딩 2개 층을 전부 사용하는 이 의원에는 원장을 포함해 의사 10명이 근무 중이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0명 중 피부과 전문의는 한 명도 없다. 모두 의대 졸업 후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레지던트)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반의’다. 한 블록 건너에 있는 B의원도 의사 9명 중 6명이 일반의다. 나머지 3명은 전문의지만 피부과가 아닌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A, B의원은 피부과 진료를 하고 있지만 정작 피부과 전공을 한 의사는 없는 셈이다.

이처럼 일반의가 운영하는 의원이 늘어나는 가운데, 최근 5년 새 개원한 일반 의원 10곳 중 8곳 이상이 ‘피부과 진료’를 내건 것으로 확인됐다. 동네 의원도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로 대표되는 필수의료 과목을 기피하고 미용 분야로 쏠리는 경향이 뚜렷했다.

● 신규 일반 의원 86% “피부과 진료” 내걸어
전문의가 연 의원들이 ‘○○내과’ ‘○○이비인후과’와 같이 과목명을 간판에 쓰는 것과 달리 일반 의원은 병원 이름에 과목명을 쓸 수 없다. 그 대신 일반 의원은 ‘○○의원’ 혹은 ‘○○클리닉’이라고 쓴 후 그 옆에 어떤 과목을 진료하는지 몇 개든 표시할 수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새로 개원한 일반 의원 총 979곳 중 86%인 843곳이 진료과목으로 피부과를 내걸었다. 의원 1곳당 표시된 복수의 진료과목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같은 기간 신규 개원 일반 의원 또한 2018년 179곳에서 지난해 215곳으로 20.1% 증가했다.

피부과와 함께 대표적인 ‘비필수 미용’ 분야로 분류되는 성형외과를 진료과목으로 표시한 곳도 414곳으로, 전체의 42%에 달했다. 반면 최근 병의원 부족 문제가 불거진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진료가 가능하다고 내건 곳은 각각 59곳(6%), 224곳(23%)에 그쳤다.

일반 의원들이 미용 분야에서 개원하는 건 결국 수입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용 시술은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시술 비용이 고가로 책정되는 반면, 감기 환자 등을 주로 보는 가정의학과나 소청과는 대부분 건보가 적용돼 환자 1명당 진료비가 적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피부과 의원에서 일하는 의사의 평균 연소득은 3억263만 원으로, 소청과 의원 의사(1억875만 원)의 3배 수준이었다.

● 필수의료 ‘1차 관문’ 부족 우려
전문가들은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고난도 수술을 하는 의사들뿐만 아니라 일반의들도 필수의료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의들이 운영하는 동네 의원들은 환자들을 가장 가까이서 진료하고, 큰 병이 의심되는 환자를 선별해 상급 병원으로 보내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일반 의원들이 이렇게 ‘1차 관문’ 역할을 해주면 상급 병원에 경증 환자가 쏠려 정작 꼭 필요한 환자가 제때 진료를 못 받는 문제도 자연히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문의를 포기하는 일반의가 늘고, 더욱이 일반의들이 미용 등 비필수 분야로만 쏠리면 필수의료 인력 확충에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동네 의원서 상처 봉합 수술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대형 병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도 동네 외과가 줄고 일반의 개원이 늘어난 데 있다.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도 늘어난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가 아닌 ‘미용 일반의’로 쏠린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또, 미용 시술을 주력으로 하는 일반 의원이 늘수록 환자가 받을 의료 서비스의 질이 들쑥날쑥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 의원들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박리다매식으로 많은 환자를 받아 수익을 내는 이른바 ‘공장형’ 의원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하은 대한피부과의사회 홍보이사는 “피부과에 대한 전문적인 수련을 받지 않은 일반의의 경우 혹시 모를 부작용 등이 발생했을 때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메리트 없어” 수련 꺼리는 의대생 늘어
10년 전만 해도 의대생이 졸업 후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며 수련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심평원에 따르면 2013년 전국 수련병원에서 모집한 신규 전공의는 3414명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신규 전공의는 2013년보다 537명 줄어든 2877명에 불과했다. 한 해 의대 정원이 3058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 지난해에 의대를 졸업한 후 추가 수련을 받지 않고 일반의로 남기를 선택한 젊은 의사가 180명이 넘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변화는 수련 과정에 대한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는 젊은 의사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병원들이 전공의를 교육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값싼 노동력’으로 보다 보니 교육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이 때문에 일찍 개원가로 나가 실제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의술을 배우는 게 낫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 C 씨는 “대학병원에서 전문의를 따고 나가도 최소 1, 2년 동안은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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