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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수위에 '인구'가 없다…당면한 충격들 대응할 수 있을까?

[취재파일] 인수위에 '인구'가 없다…당면한 충격들 대응할 수 있을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구성과 인선은 그 자체로 차기 정부의 방향성과 관심사를 대변한다. 이번 20대 대통령 인수위는 경제와 외교·안보 등 7개 분야, 7명의 간사와 23명의 위원(대변인 포함 24명)으로 꾸려졌다. 그런데, 있어야 하고 또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분야의 전문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인구'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 현판식 참석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인수위원의 인선을 놓고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MB맨의 부활' 등 여러 특징이 입에 오르내렸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대선 승리의 주요 이유로 꼽고, '탈원전 정책 폐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부동산 전문가, 에너지 전문가를 위원으로 등용하지 않은 점도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제 일을 할 사람들은 다수 포진해 있었다. 인수위는 정부와 지자체의 실국장급 고위공무원과 학계의 교수, 민간 전문가 등 76명의 전문위원을 파견받았다. 또 과장급 공무원과 청년 위원 등 실무위원도 73명에 이른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이나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에너지 전문가인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나 주영준 산업부 산업정책 실장 등이 인수위의 호출을 받았다. 인수위원은 없지만, 이들을 도와 일할 전문가들은 인수위에 포함된 것이다.

하지만 인구구조 변화를 진단하고 대응책을 정리할 전문가는 위원은 물론이고 전문위원 가운데서도 보이지 않는다. 관련 업무를 맡은 일부 중앙정부 공무원 등이 실무위원에 포함돼 있지만, 정책 방향타를 잡아줄 중량감은 부족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 현판식 참석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 상황이 의외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윤석열 당선인도,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인구구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적 대응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아동·가족·인구를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선대위 관계자는 여가부 폐지에 대한 대응을 놓고 "윤석열 (당시) 후보가 인구 감소, 저출산 문제 워낙 관심이 많아서 전담 신설 부처를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이에 따라 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와 함께 정부조직법 개편안에서 '인구가족부'가 등장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고용안정·주거안정·일-생활 균형 환경 조성'의 거시적 접근과 '임신·출산·양육 지원'의 복지적(미시적) 접근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추진한다는 것이 기본방향"이라고 밝혔다. TV토론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임신과 출산지원, 일자리 확대, 주거 안정, 일·가정 양립 등 모든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지나친 경쟁 사회의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하며 인구 문제가 저출산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얽힌 문제라는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청년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이뤄서 일자리 문화를 개선하고 기회의 균형을 잡아야 청년들의 지향점이 다원화되면서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선거기간 내내 '연금개혁'을 외쳤다. 연금개혁은 인구구조 변화가 가져오는 가장 첨예하고 풀기 어려운 숙제 중 하나다. 안 위원장은 현재의 연금 제도를 "이대로 두는 것은 범죄 행위"라고까지 말하며 시급한 개혁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인구절벽과 관련해서는 "우선 좋은 직장을 만들고 주거환경을 제대로 개선하고 공급해야 한다.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을 하는 것이 근본적인 저출산 정책이라고 생각한다"는 해법을 가지고 있다.

인수위에 인구 전문가가 없는 게 의아한 두 번째 이유는 인구구조의 변화가 가져올 충격은 임박해 있고,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천천히 오지만 분명히 관측되고, 상륙하면 거대한 파괴력으로 모든 것을 바꿔버리는 지진해일 같은 사회현상이 인구구조 변화다. 이미 오래된 이야기인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 뿐만이 아니다. 저출산, 저출생, 고령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등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게 2022년 대한민국이다.

한국 인구구조 변화는 매우 한국적이다. 변화가 극적이고 편차가 크다. 출생아 수가 이렇게 뚝뚝 떨어진 나라도 드물지만, 노인이 이렇게 확확 늘어나는 나라도 보기 힘들다. 흔히 '저출산 노령화' 하면 "이러다간 나중에 일할 사람이 줄어들어 경제 활력이 떨어진다" 정도의 인상만 가지고 있지만, 해일은 이미 해안가에 도달했다.

이미 지난해 한국의 대학은 '정원 미달'이라는 파도를 맞았다. 코로나19로 유학생이 줄고, 대학 진학률도 줄었지만 진짜 원인은 2002년에 태어난 아이의 수다. 2002년생 출생아는 모두 49만 6천 명인데, 2년 전인 2000년생 64만 명과 비교하면 14만 3천 명이나 급감한 인구 그룹이다. 불과 2년 만에 한 연령대가 22% 넘게 줄어드는 것을 대학이 맞닥뜨린 것이다.

인구사회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 문제는 대학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조영태 교수
"대학은 대학원으로 연결이 되고 대학원은 국가의 R&D(연구개발)이다. 국가의 R&D 인력을 만들어 내는 교육기관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또, 지역 대학들이 망가지면 지역에 인재가 가지 않고, 그러면 지역에 있는 산업들은 인재를 뽑지 못해 산학연의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진다." (조영태 교수)

대학이 맞은 파도는 앞서 학교, 사교육 시장이 맞았고, 이어서 군대, 기업이 맞게 된다. 그러나 기업은 다른 충격에 직면해 있다. 712만 명, 우리 인구의 14%를 차지한다고 하는 베이비부머 (55년생~63년생)들이 황혼을 맞아 일터를 떠나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 맏이인 55년생들이 만 65세를 맞았다. 통계상으로는 '생산연령인구', '경제활동인구'(15세~64세)에서 빠져나와 고령층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요즘 60대는 청년 취급을 받지만, 법적으로는 정년이 지난 나이다.

노인부양비는 급등한다. 재작년에 813만 명이었던 65세 이상 인구는 20년 뒤엔 1,722만 명으로 두 배가 넘게 늘어난다. 산업 현장의 인력 부족, 생산성 저하, 연금 고갈, 건강보험 재정 악화, 노인 빈곤 문제 등이 도미노처럼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학 전문가인 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런 대한민국의 상황을 "이 상태로 그대로 놔둬서 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최슬기 교수
"최근 몇 년 들어 연거푸 계속 더 안 좋아지고 있다. 연간 출생아가 40만 명 태어나던 게 이제 20만 대 중반으로까지 떨어졌고, 합계출산율도 그래도 1.0은 넘었던 것이 0.81까지 떨어졌다.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는 정부 조직의 개편까지도 지금 인수위에서 논의가 필요하다." (최슬기 교수)

현재 인수위에 이 문제를 다룰 인구 전문가가 있는지 묻자 조영태 교수는 "한 사람도 없다. 신기할 정도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인수위가 손댈 게 없을 정도로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앞선 정부의 준비가 충분한 걸까? 그렇지 않다.

최슬기 교수는 "저고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며 지금까지의 인구 정책을 비판했다.
"지난 5년간 인구문제는 다른 목표에 휘둘리기만 했지 문제 자체를 제대로 파고들진 못했다. 지금 시점에 와서는 이제 이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새 정부에서 지금 이 문제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잘 안 보인다." (최슬기 교수)

조영태 교수는 "지금까지는 인구 문제라고 하면 저출산만 신경 써 왔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보육, 또는 젠더 관점에서만 정책과 예산이 집중됐다. 복지부가 키를 잡으면 보육의 관점에서만 문제를 보고, 여성가족부가 키를 잡으면 젠더의 문제만 다뤘다. 그런 식으로 15년이 흘렀다. 하지만 인구 문제는 저출산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벌어진 인구구조 변화 때문에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갈지가 눈에 다 보인다. 그러면 제도와 구조와 정책들이 그 변화된 사회에 맞느냐 틀리느냐를 빨리 점검해서 바꿀 건 바꾸고 새로운 걸 기획해야 하는데, 지금 그런 기획을 할 조직(정부 부처)도, 법도 없다." (조영태 교수)

이런 관점에서 조 교수는 새 정부에는 인구 구조의 변화로 벌어질 것이 예상되는 복잡한 갈등과 경제구조의 변화를 총괄해 조정할 수 있는 정부 조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민들의 삶이 놓인 문제를 미리 대비해야지, 일이 닥쳐서 혼란스러우면 안 된다. 미래에 대한 기획 기능이 들어간 조직과 이를 뒷받침할 법이 필요하다. 꼭 새 부처를 만들지 않더라도 복지부 장관을 '인구 부총리'로 격상한다든지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조영태 교수)

현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제정과 함께 출범했고, 현재는 문재인 대통령이 위원장인 대통령 직속 기구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집행 기능이 있는 정부 부처가 아니라서 예산권이나 법안 발의의 기능이 없다. 또, 컨트롤 타워로서의 정책 조정 기능보다는 '저출산 고령화 로드맵' 등 정책 자문기구의 성격이 강하다.

인구 감소 심각

대선 과정에서 '저출산 극복'에만 초점을 맞춘 공약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정부 출범 전에 이를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최 교수는 말한다.
"저출산 문제는 경쟁적인 출산 지원 경쟁으로 이어져 왔다. 선거는 끝났고, 다른 공약들을 지금 점검해 보고 있는 것처럼 저출산 관련 공약도 반드시 점검이 필요하다. 청년 세대가 '애를 가질 만하다, 결혼할만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허공에 뿌리는 돈이 된다. 더 늦기 전에 지금 공약들에 대해서 효과성 검증을 하고 정책을 재검토하는 게 필요하다." (최슬기 교수)

예컨대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에 출산 후 1년 동안 월 100만 원씩 총 1,200만 원을 주는 '부모 급여'를 공약한 바 있다. 지난해 출생아 27만 명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3조 2천억 원이 드는 대표적인 재정지원 공약이다. 이 정책이 검토 없이 그대로 국정과제에 담기면 예산 편성이나 입법 과정에서 많은 진통이 예상된다. '현금 살포' 만으로는 저출산 대응이 어렵다는 효과성 시비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20대 인수위는 이미 발차했으니, 인적 구성의 재편을 기대하긴 힘들다. 현재 인적 구성만으로는 인수위 단계에서 복잡다단한 인구문제를 종합적으로 조율하고 정책을 적절히 재검토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담 부처가 신설된다고는 하지만 여가부 폐지와 조직 개편 등 몸풀기에만도 상당한 힘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과연 신생 부처가 이해관계가 첨예한 대학 구조조정과 정년 연장 논의 등을 전담해 조정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권 교체가 이뤄져도 이어갈 정책은 이어가야겠지만 인구 정책은 그렇지 않다. 새 정부가 인구구조 변화라는 혜성이 다가오는데도 '위를 쳐다보지 않는' 정부가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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