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최근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에서 지원자 수는 정원의 78.5%(2020년), 37.3%(2021년), 27.5%(2022년) 그리고 16.4%(2023년)로 해마다 급격히 무너졌다. 이에 따라 대구 지역 5개 수련병원의 전공의 숫자는 정원이 매년 15명씩으로 전체 60명이지만 현재, 4년차 11명, 3년차 2명, 2년차 2명, 1년차 0명으로 전체 정원의 25%만 충원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5년에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련기간이 4년에서 3년으로 줄어들어 3년차와 4년차가 같이 수료하게 되므로 동시에 사라지게 된다. 지금의 상태가 지속되면 대구지역 3년 수련기 간의 전공의 정원은 45명이나 ‘0’명 사태가 온다. 다행히 내년부터 완전 회복이 된다고 해도 이전 상태로 정상 진료가 되는 데는 5년 이상이 걸린다. 그러나 획기적인 보완대책을 세우지 않는 이상, 그렇게 회복될 가능성은 없다.

해당과 전공의 지원이 없으면 바로 직격탄을 맞는 것은 동네의원이 아니라 수련병원이다. 쉽게 말해서 각 수련병원의 전공의 역할은 엄청난데 그 역할을 대신할 대체 의사를 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교수는 입원환자에 대한 진단과 치료의 방침을 세우지만 이를 치료하는 세부 의료행위는 거의 대부분이 전공의에 의해서 이뤄진다. 한 예를 들어 보자. 창백한 어린이가 내원하여 진찰한 결과가 급성백혈병으로 의심되어 입원하였을 때 수행해야 할 의료행위로는 정확한 병력, 과거력, 가족력 청취와 전신 진찰, 신체계측, 수액보존 치료, 채혈을 통한 혈액검사, 골수검사(고형 암일 경우에 조직생검), 척수천자, MRI, CT 등 방사선 촬영으로 병이 어디까지 전이되었는지에 대한 기본 조사가 이뤄진다. 이 중에서 주치의(전공의)로서 반드시 해야 할 수기는 채혈(나이가 어릴수록 검사실 직원이 아닌 주치의가 실행), 수액보존, 약물치료, 골수검사, 척수천자 등이다. 매일 진행되는 아침보고, 회진 참여 그리고 2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야간 당직(일명 퐁당퐁당)이다. 그리고 교육 차원에서 콘퍼런스에 참여하여 주제 발표가 뒤따른다. 의과대학 시절에는 동료들과 어울려 몸으로 때우면 위로도 되고 시간이 흘러 해결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의사로서 생명에 대한 책임이 항상 뒤따라 스트레스의 연속으로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간다.

지금 현재 전공의 충원 25%의 상황에서 대학병원은 비상사태를 맞았다. 아니 수년 전부터 이미 초유의 상태에 돌입했다. 대학병원은 개인의원에서 보내진 초진 환아들과 장기 관찰을 필요한 환자의 외래진료 군과 입원환자 군으로 구성된다. 외래진료는 교수, 전임의(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세부 분과전문의 과정에서 수련하는 의사)그리고 수석 전공의에 의해서 이뤄진다. 전문의 배출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전임의 숫자는‘0’이다. 입원환자의 주치의는 전공의가 맡았는데 오래전부터 전공의가 없으니 대부분 교수가 직접 전공의 역할을 해야 했다.

얼른 보기에 일부 진료가 전공의에서 교수로 상향(up-grade)되었으니 우선은 좋아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의 연속이다. 그러면 소아청소년과는 해당 교수가 외래와 입원환자 모두를 담당해야 한다. 소아청소년과 교수진은 병원 경영상 대부분이 한 분과에 한 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아청소년과의 교수가 여러 명이라고 해도 이미 타 분과의 발전된 학문의 영역을 수행할 수가 없다. 한 분과 영역을 집중해서 진료·연구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봐서 타과에 비해서 노력은 못지않게 하나 건강의료보험 수가 반영이 턱없이 모자라 과별 병원 수익은 최하위 그룹에 속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월급도 최하위 그룹에 속할 수밖에 없다. 병원경영을 책임지는 병원장의 눈 밖(?)에 나 있어서 소아청소년과의 교수 증원은 늘 뒷전에 밀리기 마련이다. 그뿐만 아니다. 진료에 필요한 새로운 의료장비 구입에서도 과별 수입 기여도가 크면 당연히 할당도 많아지나 소아청소년과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의료사고 많지 병원수입 없지, 한 마디로 병원 내에서 찬밥신세(?)인 셈이다. 어린이는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이지만 이들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의 미래는 그렇지 못하다. 지칠 대로 지쳐서 체력의 한계를 느낀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의 이직사태는 누가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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