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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실손 청구 간소화될까 … 14년만에 급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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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법 개정안 27일 상정
"정보보안·보험료인상 우려"
의료계 반대로 14년간 표류
중계기관 보험개발원 급부상
2월 국회 문턱 넘을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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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손 모씨는 2010년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했지만 한 번도 보험금을 청구해 본 적이 없다. 손씨는 "크게 아픈 일이 없었고, 병원에 가도 진료비가 5000원, 8000원 수준이어서 진단서를 떼는 비용이 더 들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괜히 소액으로 여러 번 청구했다가 나중에 실손보험 갱신이 안 될까 봐 그냥 포기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실손보험 가입자가 손씨와 비슷한 이유로 소액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고 있다. 보험업계와 시민단체(보험소비자)는 번거로운 종이 서류 제출 없이 클릭 몇 번으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서비스 도입을 추진해왔지만, 의료계 반발로 14년째 표류하고 있다. 2월 국회에만 6개의 관련 개정안이 상정된 가운데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서비스가 오는 27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1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는 27일 법안소위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게 목표다. 2020년부터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은 총 6개로, 의료기관의 전자증빙자료 발급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전재수·김병욱 의원안은 '전문기관 위탁'을 제안했고, 윤창헌·고용진·정청래·배진교 의원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위탁'을 내걸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 심평원 위탁을 강하게 반대하면서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자 최근 보험개발원이 중계기관 후보로 급부상했다.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데다 정치권에서도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이번에는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현행 실손보험금 청구 시스템은 모두에게 불편한 구조다. 소비자는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병원에 방문해야 하고, 의료기관 원무과는 서류 발급 업무에 시달린다. 보험사는 종이 문서를 심사한 뒤 이를 전산으로 다시 입력해 보관하는 등 소모적인 업무 부담을 떠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연간 수억 장의 종이가 한 번 사용되고 버려진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소액을 청구한다고 실손보험 갱신이 안 된다는 것은 오해다. 적은 금액이라도 청구해서 받는 것이 좋다"며 "고객들이 몇 천 원까지 다 청구하면 지급 보험금은 늘어나겠지만, 관련 업무나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보험사 입장에서도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의료기관은 보험사 및 관련 스타트업과 제휴해 자체적으로 청구 간소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의료기관과 보험사가 참여해야 청구 전산화·간소화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심평원에 따르면 전국 요양기관(병·의원, 약국 등)은 9만6000곳이 넘는다.

관건은 의료계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다. 의료계는 예전과 달리 민관 주도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면서도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날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1차적으로 환자 민감 정보의 보안이 우려되며,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보험료율 인상의 근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법제화를 찬성하지 않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급부상한 보험개발원의 중계기관 역할론에 대해서는 "보험개발원 역시 성격상 적절한 곳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금융소비자 단체는 의료계의 반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실손보험은 국민 대다수인 4000만명이 가입한 상품이지만 청구가 불편해 1차 병원 진료비 등 소액 보험금은 청구를 포기하는 것이 실상"이라며 "의료계가 이를 거부한다면 입법으로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강한 처리 의사를 밝혔다.

[신찬옥 기자 /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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