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침 투여횟수·대상상병·용량 기준 아예 없어
다종시술 기준도 전무… 한방 과잉진료 원인으로
관련 고시 개정안 내놨지만… 한의계 반대에 표류 중
업계 "수가기준 명확히 해 선량한 소비자 피해 없어야"

[서울와이어 최석범 기자] 작년 자동차보험이 지급한 총 진료비에서 한방이 차지하는 비중이 양방을 뛰어넘었다. 한방병원이 본인부담금 없는 치료가 가능하다며 환자를 유치한 뒤 과잉진료를 부추긴 게 주효했다. 지속된 보험금 누수로 선량한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 상황. 자동차보험이 한방병원의 ATM기계로 전락한 이유와 해결방안에 관해 살펴본다.

자동차보험이 한방병원의 주요 수익창출원이 됐다. [사진=픽사베이]
자동차보험이 한방병원의 주요 수익창출원이 됐다. [사진=픽사베이]

자동차보험이 한방병원의 캐시카우(수익창출원)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불명확한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기준 때문이다. 자동차보험은 국토교통부 고시가 정하는 자보수가에 따라 급여, 비급여 치료항목을 모두 보상한다.

하지만 한방 진료항목 중 핵심인 첩약은 1회 처방시 최대 10일 처방이 가능하다고 돼 있고, 약침은 투여횟수, 대상상병, 용량 등의 기준이 아예 없다. 다종시술에 관한 내용은 전혀 다루지 않고 있다. 교통사고 환자가 내원하면 일시에 처방해 과잉진료 주범으로 꼽히는 '한방 8종 세트'가 성행하는 것도 이런 미비한 기준 때문이다.

업계는 보험금 누수의 원인이 불명확한 자보수가 기준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관계부처인 국토교통부에 한방 진료수가를 구체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방진료 시술 횟수·기간, 처방가능일수와 같은 부분의 세부기준을 마련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합리적인 세부심사지침을 만들어 한방 과잉진료를 억제해 달라는 게 핵심이다.

국토부와 금융당국도 이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지난 2021년 '자동차보험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 공개했다. 방안에는 상급병실 입원료 지급기준 개선, 경상환자 장기 치료시 진단서 의무화, 한방분야 진료수가 기준 개선 총 3가지가 담겼다.

해당 내용은 국토부 고시에 담겨 같은 해 7월 15일부터 8월 5일까지 행정예고 됐으나, 한의계의 강한 반발로 차일피일 미뤄졌다. 

이 가운데 상급병실 입원료 지급기준은 우여곡절 끝에 이달 9일 시행됐다. 그동안 일부 한방병원은 자동차보험수가 기준에 따라 7일까지 상급병실을 이용할 수 있는 규정과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해 병상이 10개 이하인 경우 일반병상 확보 의무를 지우지 않는 규정을 악용했다.

의도적으로 병상수를 기준 이하로 설치하고 이를 1~2인 상급병실로 만들었고, 고액의 병실료를 청구해 돈을 쓸어담았다. 이 결과 상급병실 입원료 지급규모는 2016년 15억원에서 2021년 343억원까지 뛰었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경상환자 장기 치료시 진단서 의무화, 한방분야 진료수가 기준 개선안은 시행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별도의 테스크포스(TF)를 만들고 총력 저지에 나서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 TF는 이달 14일 회의에서 "충분한 근거자료를 확보해 국토교통부 등을 비롯한 정·관계에 이번 개정안이 가지고 있는 불합리성에 대한 의견을 강력하게 전달하는 등 철저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정부에서 근거도 없는 개정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면 한의계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총력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반면 손보업계는 한방병원의 과잉진료가 선량한 보험소비자의 피해를 만드는 만큼, 불명확한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기준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자동차보험 한방 과잉진료 등으로 보험금 누수가 발생하고 이로인해 대다수 국민들의 보험료가 인상되고 있다. 자동차보험 수가기준이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불필요한 보험금이 새어나가는걸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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