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기고] 지속가능한 필수의료 구축, 어떻게 할 것인가

박진규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서울=뉴스1) | 2022-11-14 16:35 송고
박진규 대한의사협회 부회장./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박진규 대한의사협회 부회장./뉴스1 © News1 오장환 기자

지난 8월 서울 모 대학병원 간호사의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사망사고를 통해 필수의료에 대한 국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화려하게 성장한 우리나라 선진의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으로, 우리나라 필수의료에 관한 명제를 위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시켜야 하는 문제로 발전했다. 조기에 적절한 처치·치료가 되지 않을 경우 생명을 잃거나 평생 중증장애가 발생될 수 있는 필수의료를 잘 유지하고 지켜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그 공감대를 현실화하는 데 어떻한 정책적 개선, 지원이 필요한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지속가능한 필수의료 시스템을 만들어 유지하기 위해, 먼저 필수의료가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 필수의료를 국민 누구에게나 최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의료 행위라고 좁은 범위로 한정한다면 긴급성, 중증도, 생명에 대한 우선순위의 중요성을 근거로 정할 수 있다. 중증 외상, 심혈관 질환, 뇌출혈을 포함한 뇌혈관 질환 등처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긴급성과 중증도를 가지는 질환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의료급여환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 신생아, 고위험 분만, 장애인, 정신질환등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보건의료도 필수의료 분야에 속하며 재난 및 감염병 등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공공보건의료도 필수의료 영역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필수의료 체계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며 최우선 보장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

산부인과, 흉부외과, 외과, 신경외과 등 외과계 필수의료 인력수급의 만성적인 어려움은 히포크라테스적인 사명감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최악의 '워라밸', 높은 의료분쟁의 위험에서 기인한다. 특히 외과계의 필수의료과들은 일반적 타과의 전공과는 다른 차원의 중증응급환자를 치료하는데 1년에 반 이상 야간당직 혹은 콜당직을 하는 경우가 많고 노동 강도도 타과의 전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수가는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되어 있다. 필수분야 외과 수술 수가의 경우 가까운 일본 수가의 약 20%, 미국의 약 10%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 필수의료 붕괴를 촉진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가와 워라밸 이상의 큰 장애요소가 있다. 중증 필수의료분야의 진료는 최선의 진료·치료와 상관없이 사망·중증장애의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필수의료행위 자체에 대한 위험성으로 진료와 처치·수술에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질 수밖에 없다. 

원치 않는 치료의 결과는 종종 장기간의 의료분쟁으로 이어지며 의료진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성공률이 낮더라도 중증 환자와 질병에 대해 적극적인 치료가 최선이지만 낮은 성공률이 예상되는 중증환자의 적극적 처치나 수술은 치료 합병증 발생 가능성과 분쟁 가능성을 높인다. 

분쟁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진료가 결국 방어진료이다. 10년 이상 외과분야 등 필수의료 전공을 수련받고 진료해 온 전문의들에게 전문 진료를 포기하고 분쟁이 적고 워라밸이 좋은 일반 진료로 전환하게 만드는 근본적 배경이 되며 대부분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소극적으로 진료하고 치료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처치나 수술 중에 발생된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은 어느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고 빈도도 높다. 2022년 의료정책연구소 보고서의 의료사고 관련 사망사건 기소율 국가별 비교를 보면 우리나라의 기소 건수(연평균 754.8건)는 일본의 입건송치 건수(연평균 51.5건)와 비교해 14.7배 높으며, 영국의 기소 건수(연평균 1.3건)와 비교해 580.6배 높고, 독일의 의료과실 인정 건수(연평균 28.4건)와 비교하여 26.6배 높다. 

더구나 내년부터 수술실 CCTV 의무화법이 시행되면서 외과계 필수의료분야의 공백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에서 필수의료분야 인력공백에 대한 대책으로 의대정원 증원, 공공의대 신설을 언급했는데 2022년 현재 필수의료 분야의 전문의 숫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을 훨씬 웃돈다. 논란의 중심인 신경외과 전문의 수를 보면 인구 10만명당 OECD 평균이 1.33명인데 반해 한국은 4.75명으로 3~4배 정도 많다. 당장이라도 현실적 정책개선이 시행된다면 필수분야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 필수의료에 관한 가장 큰 문제는 생사를 넘나드는 중증 필수환자 치료시에 발생될 수 있는 법적 분쟁의 해결책 즉 의료분쟁에 대한 형사면책(免責) 특례법, 워라밸을 개선할 재원의 조달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필수의료 분야에서 신경외과 외에도 산부인과, 흉부외과, 소아과 등은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으로 무너지고 있다. 의료를 냉정하게 시장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비인기과는 경쟁력을 잃어버렸기에 자연스럽게 없어지도록 방치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필수의료를 수요공급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안 되기 때문에 필수의료 유지에 대한 논쟁이 불붙은 것이며, 간호사 사망사고는 의료를 시장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 예이다. 필수의료 분야는 소방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어 화재발생의 건수와 상관없이 항상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만 한다.

시장의 관점, 즉 경제학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아주 쉽게 표현한다면 국민수요와 상관없이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최근 발생한 레고랜드 부도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는 50조원을 풀겠다고 발표했다. 레고랜드 부도로 여러 금융회사가 파산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난해질 수 있다. 그러나 필수의료 체계가 무너지면 가난해지는 것을 넘어 더 많은 국민의 생명을 잃거나 영구장애로 남을 수 있다. 지속 가능한 필수의료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정부는 어느 정도의 재원을 지불할 생각이 있는가. 

/박진규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기고의 내용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