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수가, 부족한 지원 속 전문 의료기관 절대 부족
의사와 환자 잇는 '연결고리' 지원 정책 있어야

국내 방문진료 상황은 '겨우 걸음마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열악하다. 방문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원은 거의 없다(사진 출처: 건강의 집 공식 홈페이지).
국내 방문진료 상황은 '겨우 걸음마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열악하다. 방문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원은 거의 없다(사진 출처: 건강의 집 공식 홈페이지).

"충청도에서 전화가 왔다. 한 번 와줄 수 없느냐고. 오죽하면 여기까지 전화를 했을까. 환자와 보호자는 절박한데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의사는 너무 적다."

국내 방문진료 현황을 묻자 건강의 집 김창오 원장은 충청도에서 걸려온 전화 이야기를 꺼냈다. 방문진료 전문 의원인 건강의 집은 서울시 강북구 번동에 있다. 서울 안에서도 대표적인 의료취약지다.

지난 2019년 문을 연 건강의 집은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방문진료 전문 의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3년이 지났지만 건강의 집은 여전히 유일한 방문진료 전문 의원이다.

"정말 방문진료하는 곳이 없어도 너무 없다. 최소 지자체 당 1곳씩은 있어야 국내 방문진료 수준과 방향성을 제대로 논하기라도 할 텐데 현재는 전무한 실정이다."

방문진료를 해도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환자 찾기가 어렵다. 김 원장은 주기적으로 복지관을 방문해 사회복지사와 함께 방문진료가 필요한 이들을 찾아낸다. 어디가 불편한지,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어떻게 도울지 하나씩 알아내는 과정이 '모험' 같다고 했다. 첫 환자를 시작으로 이렇게 모인 환자가 이제 200명에 이른다. 김 원장이 주치의로 다달이 방문하는 환자는 100명이 조금 안 된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이 대부분이다.

올해 확대 시행에 들어가는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 참여기관은 지난해 9월 기준 343곳이다. 이 가운데 실제 방문진료를 실시한 기관은 136곳에 그친다. 여기서 방문진료를 받은 환자도 2,962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 중간평가 과정에서 정부도 사업 목표보다 활용도가 낮다고 평가했다. 주 원인으로 낮은 수가가 지목된다.

시범사업 수가 일본보다 높다지만…의사 참여 이끌긴 역부족

방문진료 시범사업 참여 기관이 선택할 수 있는 수가는 두 가지다. 방문진료료Ⅰ은 12만4,280원이다. '기본가'만 보면 8만5,000원선(8,880엔)인 일본보다 높다. 대신 행위료와 약제·치료재료가 모두 포함돼 있어 별도 산정은 못한다. 방문진료료Ⅱ는 8만6,460원을 주는 대신 별도 행위료 산정이 가능하다.

정부는 현행 수가가 적정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저조한 참여율은 현재 보상체계가 방문진료 현장으로 의사를 이끌어내기 부족하다는 뜻이 된다.

여기에 환자 본인부담금도 높다. 시범사업 대상자는 30%를 부담한다. 대상자가 아니면 100% 환자 부담이다. 방문진료가 필요한 환자 대다수가 고령층, 장애인이다. 방문진료를 받고 싶어도 선뜻 하기 어렵다. 일본은 75세 이상 후기고령자는 본인부담금 10%만 낸다.

환자는 어디에…숨은 환자와 의사 연결고리가 없다

그럼 수가를 현실화하고 환자 본인 부담금을 낮추면 사업도 활기를 띨까. 당사자인 김 원장은 수가보다 오히려 '네트워크 구축'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방문진료 참여 의료기관과 참여 대상자를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연결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현재로선 의사가 방문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만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방문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외래 환자처럼 스스로 찾아오지도 않는다. '방문진료'의 본뜻처럼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시범사업 수준에서 외래를 병행하며 김 원장처럼 환자를 찾아 마을을 '모험'할 수 있는 의사는 많지 않다. 김 원장은 의사와 환자의 연결고리를 만들지 않으면 "수가만 덜렁 주는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지역포괄케어센터(地域包括支援センター)가 의사와 환자를 연결한다. 지역포괄케어(커뮤니티케어) 구심점인 만큼 시정촌(지자체) 곳곳에 퍼져 있다. 설치 기준은 30분 내 다닐 수 있는 일상생활권이다. 2021년 4월 기준 일본 전국에 5,270개소가 운영 중이다. '중학교 1곳 당 지역포괄케어센터 1개소'라고 할 만큼 많다.

센터마다 의료와 개호(장기요양) 양쪽을 조율하는 케어매니저,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3인 1조로 상주하며 지역 주민과 의료시설, 개호시설을 연결한다. 재택의료 외에도 고령층 생활 민원과 지원도 여기서 담당한다.

"이런 센터가 방문진료 의뢰는 물론 의사와 환자간 커뮤니케이션도 도와야 한다. 의사들에게 방문진료는 아직 낯설고 새로운 기술이자 치료법이다. 방문진료를 처음 시작하는 의사가 이를 충분히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방문진료 환자 둘러싼 의료·경제·사회적 문제 함께 논해야

의사와 환자 간 연결고리뿐만 아니라 전문 의료기관과 사회복지시설간 협력과 연계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경증 환자는 의원, 중증 환자는 병원식으로 역할 분담하기도 어렵다. 방문진료는 의사가 환자를 처방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방문진료 의사는 환자가 앓는 병은 물론 "환자를 둘러싼 환경 자체"를 보게 된다.

방문진료하면 의사가 당뇨병이나 고혈압 환자를 찾아 원래 먹던 약을 처방하고 간단한 건강 상담을 해준 뒤 귀가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김 원장은 "그런 '예쁜' 환자는 전체 10%도 안 된다"고 했다. 방문진료 대상자 절대 다수가 '복잡한' 환자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치매나 파킨슨 병을 앓고 심장병으로 고통 받는다.

의료적 문제뿐만 아니다. 경제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까지 얽혀 있다. 고령층과 장애인 인구의 높은 빈곤율, 사회적 고립이 이들을 더 힘들게 한다. 환자를 질환 중증도만으로 나눠 역할을 논하는 건 "현장과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래도 앞으로 국내 방문진료 전망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그 필요성이 커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방문진료에 부정적이던 의료계 분위기가 환기된 게 좋은 신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재택의료, 특히 방문진료 필요성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방문진료 환경만 점차 개선되면 참여도 늘어날 거라고 봤다. "개인적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방문진료하는 동료 의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방문진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복잡한 문제를 한 겹 한 겹 들여다볼 수는 있다.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함께 노력하고 싶다."

방문진료 전문 의원 건강의 집을 4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창오 원장.
방문진료 전문 의원 건강의 집을 4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창오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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