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약 처방해주세요’… 의사·약사 “황당하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원하는 약 처방’ 기능 등장
탈모·여드름·다이어트 약 요청 많아
실제 처방 여부는 의사 판단에 달려

기사승인 2022-06-04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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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 처방해주세요’… 의사·약사 “황당하다”
닥터나우의 원하는 약 처방받기 기능. 애플리케이션 갈무리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원하는 약 처방’ 기능 등장에 개원가와 약국가의 한숨이 깊어졌다.

원하는 약 처방 기능은 환자가 원하는 의약품을 지정해 의사에게 처방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 서비스를 동시에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스타트업 닥터나우가 최근 베타버전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탈모, 여드름, 다이어트 약이 가장 인기다. 현재까지 가장 많은 이용자들이 처방을 요청한 약 1~3위는 순서대로 남성형 탈모증 치료제 ‘피나온정1mg’, 여드름 치료제 ‘이소티논연질캡슐10mg’, 비만치료제 ‘리피다운캡슐120mg’ 등이다. 

환자가 요청하는 약을 실제로 처방할지는 의사의 판단에 달렸다. 처방 후 지불해야 하는 약값 또한 약사가 책정한다. 앱 화면에도 ‘처방 가능 여부는 의사가, 약 가격은 약국이 결정합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기재됐다. 제품의 사진과 함께 추정 가격, 복용방법, 주의사항 등 기본적인 정보도 제공된다. 통상적인 온라인 쇼핑몰의 제품 판매 화면과 유사한 모습이다.

약국가에서는 해당 기능이 약사법을 위반하고 있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약사법상 의약품은 약국에서 약사만 판매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의약품을 판매, 배송하는 행위는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을 불문하고 모두 불법이다. 보건복지부가 2020년부터 한시적 고시를 통해 의약품의 비대면 처방·배달 수령을 허용하고 있지만, 이 고시가 온라인 판매까지 허용한 것은 아니다.

이동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사무국장은 “원칙적으로 환자가 전문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이후에, 의사의 소견에 따라 환자에게 적합한 약을 처방받는 것”이라며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은 의사에게 환자가 원하는 특정 제품을 요청해 처방을 의도하는 방식은 상당히 많은 문제의 소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기능을 홍보해 환자를 유치하고, 환자와 의사를 알선하는 방식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병원에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의사들은 대면진료를 양보 불가능한 기본 원칙으로 상정한다. 화면으로만 마주한 환자가 특정 의약품 처방을 요구하기까지 한다면, 이는 진료를 했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의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개원가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된 의약품을 처방해달라며 내원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은데, 의사들은 이런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환자가 진료실에 걸어 들어오는 순간부터 환자의 안색, 동작을 관찰하는 게 진료의 시작”이라며 “어떤 좋은 장비가 등장해도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는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고혈압이나 당뇨 치료제 처럼 동일한 제품을 오래 복용하는 경우라도 이를 기계적으로 함부로 처방하는 의사는 없다”며 “특히, 여드름약의 경우 임신 중인 여성이 복용하면 기형을 유발할 수 있는데, 이런 위험성을 앱으로 거를 수 있겠느냐”며 반문했다. 

한편, 닥터나우 측은 해당 기능의 순기능을 피력했다. 환자들이 기존에 복용 중인 약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어 진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비대면 진료 이용자 가운데 장기 복용 중인 약을 1차 의료기관에서 반복적으로 처방받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환자와 의사의 소통 편의성을 높인다는 것이 닥터나우 측 설명이다.

아울러 닥터나우 측은 법률상 문제가 나타나면 얼마든지 기능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닥터나우 관계자는 “해당 기능은 정식 론칭한 것이 아니라 시범 운영 중인 단계로, 기획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거쳐 법률자문을 진행해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베타 버전을 공개한 이후 보건복지부로부터 해당 기능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요청하는 문의 전화만 받았을뿐, 공식적인 시정 요청이나 공문은 없었다”며 “만약 의료법, 약사법상 문제가 발견되면 충실히 검토해 운영에 반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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