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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콜미 바이 유어 네임( 2018)-깔끔하게 만나, 쿨하게 헤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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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콜미 바이 유어 네임( 2018)-깔끔하게 만나, 쿨하게 헤어져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4.05.03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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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서평을 먼저 읽으면 작가에 대한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개는 덮고 나서 후기를 보는 편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블로그나 기사를 보면 저자와 마찬가지로 감독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든다.

그래서 영화도 독서처럼 정보 없이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가 없다고는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 낭비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조사는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눈에 확 띤 대목이 나왔다.

바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각본을 썼다는 사실이다.( 지난호에 소개한 <하워즈 엔드>의 바로 그 감독이다.) 그래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텔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게 됐다. 대사만 들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과연 처음이 좋다. 대개 좋은 영화는 좋은 책과 마찬가지로 처음 한두 장면에서 결정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계속봤다. 화면이 그럴싸하다. 그래서 요즘 유행이라는 한 달살기를 해보면 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초원과 고풍스러운 주택과 태양이 그랬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이탈리아 아닌가. 한 달 살기 아니라 일년 살라고 해도 오케이. 망상을 접고 그곳에서 영화의 주인공을 만나보자.

1983년 여름 이탈리아에는 아름다운 청년 엘리오(티모시 살라메)가 살고 있었다. 이제 17살이니 세상의 출발 선상에서 막 튀어 나가려는 활화산 같은 나이다. 집은 부자고 아버지는 교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사랑하고 알리오는 작곡에 재능이 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상위 1%에 드는 가정이라고 해야겠다. 그런 어느 날 그러니까 태양이 몹시도 뜨거운 날 이 층의 창가에서 엘리오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옆에는 예쁜 여자친구도 차에서 내리는 이방인을 보고 있다.

▲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은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은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올리버(아미 해머)가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막 차에서 내렸다. 미국인 올리버는 훤칠한 키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거칠게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엘리오는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저 잘난 미국인이 자신의 여친이나 다른 누구에게 추파를 던지면 난 어찌되나 이런 걱정이 아니들 수 없겠다.

보는 관객들도 그렇다. 걸친 옷이 거추장스러운 여름이고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 좋고 잘 생기고 키 키고 몸 좋고 언변 좋고 모자난 것이 없는 올리버는 마치 집안의 왕자처럼 행세한다.

어디서나 그는 단연 돋보인다. 춤이면 춤 술이면 술 수영이면 수영 등 못하는 것이 없다. (수영장은 네로 황제가 했다고 믿을 만큼 멋지다. 저런 곳에서 개헤엄 한 번 치고 싶다.) 질투를 넘어 왕짜증이 날만다.

관객들은 그가 일을 저지를 것을 기대한다. 엘리오의 엄마나 그의 여친이 올리버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겠다.

그런 조짐도 보인다. 카메라 속에 보이는 풍경은 그러라고 재촉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도는 마을 풍경은 보이는 장소 모두가 그림 엽서가 따로 없다. 이런 곳에서는 늘 그런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관객들은 그런 기대를 충족해 주기를 바란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이런 마음이다. 그런데 갑자기 호러물 아니 뜻밖의 일이 펼쳐진다. 올리버에 대한 엘리오의 시기와 질투가 알고 보니 사랑이었다.

그의 가슴에 기대고 발을 만지고 올리버의 사타구니를 움켜 잡을 때쯤이면 벌린 입에서 작은 탄성이 울려 퍼진다. 아, 그런 거였구나. 그래서 평을 미리 보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예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호러라고 표현할 정도의 감정 이입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 그 이후는 좀 루즈하게 흘러간다. 부모가 엘리오를 이해하는 장면은 길고 꼴사납다. 한 두 컷 정도로 가볍게 지나갔어도 좋았을 것이다.

어쨌든 만남이 있으니 헤어짐도 있다. 꿈같은 며칠 간의 밀월 여행도 끝나고 올리버는 원래 있던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엘리오도 여친과 좋게 지낸다.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줄 때 둘은 행복했다.

금단의 사과 아니 복숭아를 따먹는 엘리오의 거침없는 도전에 부모는 찬사를 보낸다. 관객은 영화에 찬사를 보내고 이탈리아의 여름 해를 보기 위해 누군가는 오소리 가방을 꾸린다.

한 달 살기 위해, 아니 열흘 여행을 위해. 200년 전 괴테처럼 설렘을 안고서. '워즈', '레이디 레이디 레이디' 등 83년 당시 유행했던 팝송을 다시 들어본다. 역시나 좋구나.

국가: 이탈리아, 프랑스 등

감독: 루카 구마다니노

출연: 티모시 샬라메, 아미 해머

평점:

: 리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거기 두 남자가 장엄한 산에서 벌이는 애정행각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쿨’하지 않았다. 만났다 헤어지는 과정이 지저분했다.

싸우기도 한다. 주먹질도 오간다. 아내에게 들켜 가정을 박살 낸다. 죽기까지 한다. 두 퀴어 영화를 비교해 보면 ‘깔끔’에 달려있다. 루카 구마다니노 감독은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물론 작은 고뇌 같은 것이야 없을까만은.)

두 남자가 깔끔하게 만나고 깔끔하게 헤어졌다. 지저분한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잘 익은 복숭아 물이 흘러 내린 것을 제외하면. 모든 사랑이 이랬으면 좋겠다. 돈 걱정 없고 취직 걱정 없고 오로지 사랑에만 몰두할 수 있다면.

그런면에서 엘리오와 올리버는 남자들의 사랑 방정식을 새로 썼다. 깔끔한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는 그래서 잔상이 오래 남는다. 이런 영화도 있구나. 특별한 갈등 없이 쿨하게 만나고 쿨하게 헤어진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남녀 간의 사랑이든 동성간의 사랑이든. 만날 때는 죽고 못 살 것처럼 하다 헤어질 때는 그야말로 상대를 죽일 듯이 달려든다면 그 사랑은 얼마나 추했고 천박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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