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가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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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가 살려야”
  • 오민호 기자
  • 승인 2024.04.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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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 국내 첫 소장이식 20년…최다 18건 기록
소장이식 개척자 이명덕 명예교수, “어렵지만 가야할 길”
20년 전 국내 첫 소장이식 수술에 성공했던 환자 이 모씨와 수술을 집도한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이명덕 교수(오른쪽).
20년 전 국내 첫 소장이식 수술에 성공했던 환자 이 모씨와 수술을 집도한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이명덕 교수(오른쪽).

“적어도 이식 수술을 하러 미국에 갈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국내 첫 소장이식에 성공한 이명덕 가톨릭의대 명예교수는 4월 22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과 대한이식학회 공동 주최로 서울성모병원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열린 ‘국내 첫 소장이식 성공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한 후 병원신문과 만나 어려운 소장이식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의료기관 전체에서 이뤄진 소장이식 수술은 총 27건이며 이 가운데 20건을 가톨릭대학교 중앙의료원 소속 병원들에서 시행했다. 이 가운데 첫 수술 성공을 비롯해 18건을 서울성모병원이 수행해, 사실상 소장이식 수술에 있어서 서울성모병원은 독보적이다.

지난 2004년 4월 28일, 짧은 창자 때문에 식사를 할 수 없어 고통 속에 지내던 중년 여성이, 장기이식 수술 후 입으로 음식을 떠먹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모든 언론사의 뉴스를 장식했다. 국내 최초로 소장이식 수술을 성공한 순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소장은 다른 장기에 비해 거부반응이 심하고 감염이 쉬워 이식 불가능의 영역으로 알려졌었다.

이명덕 명예교수는 이날을 20년 전 난공불락의 소장이식을 정복하고 우리나라 장기이식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를 수립한 날로 기억했다.

1947년생인 환자는 당시 56세로 소장과 대장 대부분을 잘라내 정맥주사로 영양을 공급받아 살아왔다. 그러나 조금 남아 있던 소장까지 막히는 합병증으로 이식 말고는 더 이상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2004년 4월 9일 환자는 딸로부터 소장 끝부분 1.5미터를 잘라내 남아 있던 십이지장과 대장에 직접 연결했고 환자는 수술 후 19일 만에 건강하게 소감을 전해 소장이식 시대를 열게 된 것.

이명덕 명예교수는 “제가 1948년생으로 지금 76세가 됐는데 처음 소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가 지금 77세가 됐다”면서 “그때 4월 9일 수술을 하고 28일, 그러니까 거의 19일이 지나고 환자가 밥도 먹고 제대로 음식을 소화시키는 것을 다 확인하고 나서 언론에 처음 공개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소장이 항상 움직이는 장기라서 이식이 굉장히 어렵다”면서 “그래도 소장 이식은 같은 수술이 없다. 케이스마다 수술 디자인도 달라지고 수술을 할 때마다 새로운 방법도 찾아야 하니 외과의사로 하여금 도전정신을 갖게 하는 게 개인적으로 좋았다”고 말했다.

여러 질환을 이유로 소장을 대량 절제한 단장증후군 환자는 장이 짧아져 식사만으로는 정상적으로 살 수 없다. 태아 때 생기기도 하지만, 환자 대부분은 후천성이다. 질병이나, 수술, 외상 때문에 소장을 많이 잘라내거나, 장이 짧지 않더라도 가성장폐색 등 최근 장 질환 증가로 후천성 단장증후군이 늘고 있다. 장의 길이에 따라, 흡수정도에 따라 주기적으로 영양주사를 맞으며 지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다.

또한 영양수액을 지속적으로 투여받으면 정맥영양공급으로 인한 간부전 및 영양수액을 투여하기 위한 중심정맥관의 감염, 혈관의 혈전으로 인한 소실 등의 합병증으로 영양수액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런 경우 사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경정맥영양공급 없이 식사로만 생명유지를 위해 소장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처음 소장이식 수술을 시도했던 당시, 국내에는 경험하지 못했기에 국내 장기이식법에 소장은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불법 논란까지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소장이식은 장기이식 중에서도 초고난도 수술이라 발전이 더뎠다. 소장은 1억개 이상의 신경세포가 있는 복잡한 기관으로 우리 몸에서 큰 면역기관으로 다른 장기보다 높은 면역항원성을 지닌다. 다른 장기에 비해 면역거부반응이 강해 면역억제제를 더 강하게 써야해서, 이식받은 환자의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진다. 게다가 이식된 소장은 대변이라는 오염원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감염의 위험성이 이식 장기 중 가장 높다.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해도 감염으로 패혈증까지 진행될 수 있다.

어려운 첫 소장이식의 기적 같은 성공 이후, 이명덕 명예교수와 장기이식센터 의료진은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전해왔다.

가톨릭 다장기이식팀은 은평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황정기(팀장)·김미형, 서울성모병원 소아외과 정재희·간담췌이식외과 최호중·소화기내과 박재명·이식감염내과 김상일·이식면역진단의학과 오은지·병리과 정찬권 교수 등 여러 임상과 전문의가 다학제로 참여하고 있다.

소장이식을 받은 환자는 성인 뿐 아닌 선천성 질환으로 생명이 위험해진 소아도 있었다. 특히 2015년에는 소아에게 소장뿐 아니라 소화기계 장기 6개(위, 십이지장, 췌장, 비장, 소장, 대장 등)를 이식하는 국내 최초 변형다장기이식 수술에 성공하기도 했다. 위장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2세 소아가 뚜렷한 원인 없이 갑작스런 가성 장폐색증상이 나타났지만 병명조차 몰랐었고, 소장 운동성이 약해 섭취한 음식물을 소화하지 못해 영양결핍과 창자 속 음식물 부패로 패혈증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장기간에 걸친 의료진의 진료와 뇌사자 기증 이식 수술로 현재 10년간 건강하게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명덕 명예교수는 “소장이식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의료 선진국에서도 성공하는 사례가 많지 않아 수술 때마다 걱정이 많았고, 단순히 넣고 이어줬다고 해서 이식이 끝난게 아니라, 환자가 주사를 끊고 밥 먹고 살이 붙는걸 봐야 성공이라 할 수 있어 수술이 끝나도 환자들이 건강하게 회복되는 날까지 하루하루 마음을 같이 졸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장기이식과 관련된 모든 병원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보탠 결과라 생각한다”며 “난이도가 높은 수술에 늘 긴장했지만 환자와 보호자분들이 어려운 과정을 잘 극복해 나가고 건강하게 생활하게 되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현재 소장이식 수술을 하는 곳은 사실상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병원들을 제외하고는 멈춘 상태다.

이와 관련해 이명덕 명예교수는 “병원들이 소장이식 수술을 안하는 이유는 낙(樂)이 없어서다”며 “굳이 어려운 길을 걸어갈 필요가 없고 성과를 내기 쉬운 곳을 선호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돌밭을 걸어가고 모래사장이 나오는 그런 길을 걷기보다 남들이 다 닦아 놓은 길을 가길 바라기 때문이라 것이다.

이명덕 명예교수는 “우리가 많은 길을 닦았는데 그럼 좀 더 많은 곳에서 하지 않겠냐”며 “다행히 아직 흥미를 갖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고 2~3곳의 병원에서는 관심을 갖고 기회를 기다리는 걸로 알고 있다”고 위안을 삼았다.

사실 효율적인 면을 따지면 이식 수술 경험을 많이 한 센터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는 게 더 낫지만,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여러 곳에서 소장이식 수술을 하는 것이 맞다는 게 이명덕 명예교수의 지론이다.

끝으로 그는 과거 10~20년 전만 해도 돈 좀 있는 사람들은 간이식을 하러 미국에 갔고 최근까지도 위암 수술을 받으러 일본에 갔었다면서 적어도 이식 수술을 받겠다고 미국이나 외국에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덕 명예교수는 “그것이 우리가 할 역할이고 동기를 줄 수 있다”면 “우리는 할 일 다 한 거 아닌가? 지금도 위암 수술 성적이 한국이 더 나은데도 돈을 싸가지고 일본 등 해외에 나가는 사람이 많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명덕 명예교수는 “여기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케어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지금 우리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4월 22일 오후 12시, 대한민국 장기이식 역사를 이어온 서울성모병원은 장기이식센터 주최로 ‘국내 첫 소장이식 성공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서울성모병원 지하 1층 대강당에서 개최하였다. 심포지엄 전 기념식에서 소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들과 의료진이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4월 22일 오후 12시, 대한민국 장기이식 역사를 이어온 서울성모병원은 장기이식센터 주최로 ‘국내 첫 소장이식 성공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서울성모병원 지하 1층 대강당에서 개최하였다. 심포지엄 전 기념식에서 소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들과 의료진이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한편 심포지엄에 앞서 진행된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박순철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은 “어려운 시기에 불모지였던 소장 이식분야를 선도적으로 시행해오신 이명덕 교수님과 당시 이식팀은 물론, 꾸준하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현재 소장이식팀과 다장기 이식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행사를 공동주최한 대한이식학회 서경석 회장, 대한이식학회 황신 이사장, 한국경정맥영양학회 김경식 회장, 가톨릭의대 외과 조현민 주임교수의 축사에 이은 윤승규 서울성모병원장은 격려사에서 “소장이식은 거부반응이 심하고 면역조절이 특히 어려운 분야로 성공적인 수술뿐 아니라 감염관리와 영양치료 등 다학제 접근이 필수적”이라며 “의료진들의 열정과 헌신적인 노력이 곧 치료받은 환자들의 생명과 행복이 됐다”고 전했다.

이명덕 명예교수의 뒤를 이어 위장관재활과 소장이식을 받은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정재희 서울성모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20년간 총 18명의 장부전환자들이 소장이식을 받았고 2024년 4월 기준 1년 생존율이 78%, 5년 생존율 72%, 10년 생존율 65%로 외국의 1년 86.4%, 5년 61.2%와 비교하여도 높은 수준”이라면서 “앞으로 소장이식을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이번 소장이식 성공 20주년 기념행사가 희망을 전달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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