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상 연세의대 명예교수

80대 노인은 조용히 만사를 참아야 오래 산다는데, 수양이 부족하여 몇 줄 씁니다.

이무상 연세의대 명예교수.
이무상 연세의대 명예교수.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 때입니다. YS정부는 1996년 11월에 YS정부의 9번째 의대설립을 임시 인가하고, 다음해인 1997년 말에 정식 인가 합니다. 의협은 1997년 가을에 전국의 신설의대의 의학교육 실태를 알고 싶었습니다. 임상교수인 2명의 학술이사 중 1명(번갈아), 그리고 기획이사(예방의학), 의협 사무총장 등 3명이 9개 신설의대에 사전 통보하고, 1회에 2개교씩 비공식 방문을 하기로 합니다. 새벽에 의협에 모여 떠났다가 한밤중에 돌아오는 고된 일정입니다.

대부분의 신설의대는 방문을 승낙했으나, 그렇지 않은 국립과 사립이 각 1개씩 있었습니다. 국가가 인가했는데, 의협이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일방적으로 방문일정을 통보하였습니다. 오전에 한 곳을 방문하고, 오후에 서남의대를 가고 있을 때입니다. 동행하는 사무총장이 조직폭력배 동원 소문이 있다며 걱정했습니다. 동행하는 기획이사는 만약을 대비해 그 지역 국립의대의 모 교수에게 서남의대 정문에서 만나자고 해서, 일행이 4명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고, '교주'와 총장 및 흰 가운의 의대 교수와 직원이 2열로 도열해 박수로 맞아 주었습니다. 떠날 때도 같았습니다. 교수들 중에는 저희의 제자와 후배가 있어서 참 미안했습니다.

서남의대(1995년 개교)는 1997년에 본과 1학년이 있었습니다. 고령의 총장님은 퇴근하시고, 교주가 직접 학교를 안내하였습니다. 의과대학은 자기의 생명과 같아서 최대한 지원한다고 하셨습니다. 돌아보다가 해부학 실습실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2학기인데 카데바(Cadaver)가 없었습니다. 교주는 인체 "Human Skeleton Plastic" 뼈 박스를 학생 2인당 1셋트씩 준다며, 독일에서 비싸게 수입하였다고 자랑하였습니다. 인체 플라스틱 골격 모형은 실제 인체 골격보다 더 정교하기에 지식 습득에는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모든 의과대학들은 굳이 인체 실제 골격을 갖고 공부할까요? 좀 떨어진 작은 방에 카데바 1구가 뚜껑이 덮여 있었으나, 해부 흔적이 없었습니다. 실습 흔적은 남게 되어 있습니다. 교주는 의대가 왜 굳이 "인체 카데바"를 사용하여 해부학 실습을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듯했습니다.

인체 해부학적 지식은 책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도 왜 전 세계의 의과대학들은 모든 학생들에게 아주 위험한 카데바를 이용하게 할까요? 더구나 살아있는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는 엄청난 양의 소독약으로 굳어진 카데바와는 아주 많이 다른데 말입니다. 왜 학생들은 카데바에서 풍기는, 발암물질로 알려진 지독한 소독약 냄새를 참아가며 해부학 실습실에서 씨름을 할까요? 긴 실습시간에 비하여 얻어지는 해부학적 지식은 가성비 측면에서 책으로 얻는 지식보다 훨씬 적은데 말입니다.

학생들은 카데바 실습으로 비로소 “생명의 경외”를 체험하고, “인체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기 때문에 학교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카데바 실습을 시키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이건 인체 해부학 실습실에서 말과 행동에서 버릇 없이 굴면 당장 쫓아냅니다. 또 세계의 모든 종교계열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실 첫 시간에는 카데바 덮개를 열기 직전에 반드시 해당 종교의 성직자가 와서 기도를 올려 줍니다. 왜 그럴까요? 카데바 실습을 통하여 바로 "바람직한 의사라는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얻고,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의사다운 의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으로 배운 의사는 환자 골격을 플라스틱으로 보게 되어 있습니다. 물건이나 기계로 보게 되어 있습니다. 폐교된 서남의대의 교주는 바로 그 점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지부 차관이 똑같아 보여서 큰 걱정입니다.

복지부 차관은 증원된 의대에 카데바가 부족이면 남는 의대가 넘기도록 법제화하겠답니다. 법 만능주의입니다. 자신을 기증한 환자와 그 가족에 대한 존경심과 예의가 전혀 없습니다. 카데바에 대한 경외심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부족하면 카데바를 수입하면 된답니다. 완전히 물건 취급, 기계 취급입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환자를 물건, 기계 취급하는 의사로 기르겠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렇게 카데바를 물건이나 기계 취급을 하니, 전공의를 그렇게도 쉽게 겁박하는 구나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런 분이 의사양성 교육의 국가 책임자라는 것이 정말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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