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노조의 경고…건강보험 사회안전망 붕괴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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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노조의 경고…건강보험 사회안전망 붕괴 ‘빨간불’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3.11.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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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료율 동결, 생계형 체납자 증가, 간병비 부담 외면, 본인부담 상한액 인상 등
“건강보험 관련 정책들 정부 역할 및 책임 줄이고 국민에게 그대로 책이 전가”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 건강보험 사회안전망이 빠른 속도로 붕괴하고 있다며 그 원인을 현 정부의 정책 기조로 돌렸다.

재정 안정, 약자 복지, 부당 제거 등을 앞세워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역할을 포기하는 바람에 고스람히 그 부담이 국민 개개인으로 전가되고 있다는 것.

건보노조는 11월 27일 ‘건강보험 사회안전망이 무너지고 있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건보노조의 설명에 따르면 현 정부는 건강보험에 다양한 규정과 제도의 변화를 촉진했다.

정부경영평가를 앞세워 건보공단 직원이 강력한 보험료 징수를 실행하게 만들고, 고물가의 어려움에 고생하는 국민은 가혹한 체납처분을 겪고 있으며 국가가 책임지던 지원금을 건강보험에서 지출하도록 하거나 건강보험이 제공하던 혜택을 축소해 개인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변화들이 그것.

약자 복지를 내세워 복지에 힘쓰고 있음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국가의 책임을 포기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어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됐다는 게 건보노조의 지적이다.

건보노조는 건강보험의 사회안전망을 무너뜨리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을 하나씩 꼬집으며 우려를 표했다.
 

건강보험료율 동결…국가 및 사용자의 보험료 부담 축소

우선, 건보노조는 2024년 건강보험료율 동결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건강보험은 국민의 의료비를 대신 부담해 돈 걱정없이 치료를 받게하는 사회안전망이므로 재원 확보가 핵심이다.

하지만 정부는 2024년 건강보험료율을 동결했고, 이는 국민에게는 고물가 시대에 작은 도움이 되겠으나 동시에 기업과 국가의 보험료 부담 책임까지 줄여준 결정이라고 비판한 건보노조다.

직장가입자의 보험료만큼 사용자인 기업과 국가도 동일 금액을 추가로 부담하므로 국민이 낸 보험료의 2배를 보험 재원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결국 그만큼의 부족분에 맞춰 건강보험의 보장을 줄일 것이 뻔하다는 의미다.

건보노조는 “가입자가 10만 원을 낸다면 회사 또는 정부의 부담금까지 합쳐져 총 20만 원의 보험료가 가입자를 위해 쓰였을 것”이라며 “단 1%의 인상만으로도 2022년 기준으로 일반사업장 2,920억 원, 국가 320억 원의 부담금이 국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보험료 결손 회피로 인한 생계형 체납자 증가

건강보험 재정 확보의 가장 손쉬운 방법은 강력한 보험료 징수다.

이 때문에 국세징수법을 준용해 건보공단은 매우 강도 높은 압류 등의 체납처분을 시행하고 있다.

단지 체납보험료 징수율은 기획재정부가 건보공단의 업무 성과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가 됐고, 올해의 목표치는 사실상 달성 가능성이 매우 어려운 수준으로 설정됐다고 비판한 건보노조다.

즉, 건보공단 직원들은 과도한 목표치 달성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 놓였고 몇만 원의 보험료조차 내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국민에게는 건보공단의 징수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건보노조는 보험료 징수가 자칫 국민의 삶을 극한으로 내몰지 않게 하려면 다른 한쪽에서는 납부할 능력이 없는 이들의 보험료에 대한 적정 수준의 결손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실히 밝혔다.

건보노조는 “납부 능력이 있는 장기 및 고소득 체납자에 집중해 징수를 집중 추진하고 건강보험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노출된 생계형 체납자에 대해서는 결손처분이 진행돼야 한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건보공단 체납보험료 징수율 목표치를 매년 높여 현장에서 강도 높은 징수를 독려하는 한편 형평성을 고려해 결손을 축소해야 한다는 경영계의 의견을 들어 결손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2009년 6월 국민권익위원회는 6회 이상 체납자에 대한 급여 제한을 하지 않도록 건강보험법 개정을 제안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올해 11월 6일에는 동일한 내용을 포함해 저소득·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제고 개선안을 의결해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에 권고한 바 있다.

건보노조는 “이번만큼은 권고안이 수용돼 국민이 건강보험의 보호를 받길 바란다”며 “병원비와 생활비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국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희귀질환자에 대한 국가책임의 건강보험 전가

건보노조는 2023년 국정감사에서도 이슈화된 저소득 희귀질환자에 대한 국가 지원금 축소는 해당 질환자들에게 매우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내다봤다.

‘희귀질환 산정특례’는 건강보험이 본인부담굼의 90%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국가가 10%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희귀질환은 진단과 치료 비용이 비싸고 장기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이 지원 사업으로 매년 2만 명 이상의 희귀질환자들이 평균 290만 원 수준을 지원받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관련 법령의 변경도, 부처 및 기관 간 협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우선 지원해야 할 예산을 150억 원가량 줄이고, 이 금액만큼 건강보험에서 대신해 지출하도록 계획하는 바람에 저소득 희귀질환자들이 직접 지원 공백을 해결해야 하는 ‘개인의 문제’가 돼버린 상황.

건보노조는 “설령 건강보험이 희귀질환자들을 지원한다고 하더라고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왜 국민이 납부한 보험료로 대신해야 하는가 의문이 든다”며 “국가 본연의 역할과 책임을 포기함에 따라 저소득 희귀질환자와 국민이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된 형국”이라고 언급했다.
 

본인부담금 상한액 인상…갈곳 잃은 요양병원 환자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는 주요 방법 중 하나가 본인부담상한제로, 올해 하반기 지난해 본인부담금의 상한을 넘긴 186만 명에게 약 2조4,700억 원이 지급됐다.

하지만 2023년도 상한액이 높아져 내년에는 지급액이 줄어들 전망이며 그만큼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낮아지고 국민이 스스로 내야 할 의료비를 커질 위기에 놓였다.

특히 요양병원에 120일 초과 입원한 환자들의 상한액이 급격히 인상됐는데, 소득에 따른 형평성 제고와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하나 요양병원 환자 중 일부는 어쩔 수 없이 입원을 선택하는 현실에서 혼자서 생활하기 어렵고 돌봐줄 사람이 없는 이들을 ‘불필요한 입원’이라는 딱지를 붙여 병원 밖으로 내보내면 안 된다는 게 건보노조의 주장이다.

건보노조는 “2017년 기준 요양병원 퇴원환자의 82%가 재입원을 했다는 수치는 요양병원 퇴원환자의 지역 복귀 노력의 효과가 여전히 미비하다는 것을 대변한다”며 “정부는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고려와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고민하기보다는 국민 스스로가 책임지고 고통을 견디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부족한 간병인과 치솟는 간병비 부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시행 8년째를 맞이했지만, 최근 보건의료노조의 의료현장 사례조사에 따르면 병상 운영비율은 2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부족, 시설 개선비용 부담, 인력 추가에 따른 인건비 부담, 서비스 제공자인 병원에 대한 유인 부족 등이 그 이유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외에는 간병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 건보노조다.

건보노조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는 단순히 수가 인상으로 단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 데다가 이를 아무리 확대하더라도 간병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며 “최근 2024년 예산 편성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요양병원 간병비 시범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되고 더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6월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전년도에 비해 간병도우미료가 11.4% 증가했으며 최근 5년으로 따지면 37.7%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건보노조는 “간병파산과 간병실직이 너무 흔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간병 부담을 줄일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기 못하고 있다”며 “과거 집안에 큰 병자가 생기면 경제적으로 가정 파탄이 났던 것을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 정책으로 해결한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든든한 사회안전망인 건강보험 역할 망가뜨리지 말아야

끝으로 건보노조는 불필요한 곳에 쓰던 돈을 아껴 꼭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은 당연하나 자칫 현 정부가 재정 안정, 형평성 제고, 도덕적 해이 방지에 함몰돼 국민의 든든한 사회안전망으로서 건강보험이 하던 역할들을 망가뜨리는 것은 아닌지 우렵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건보노조는 “국가가 해야 할 책임까지 건강보험에 떠넘기는 것이 정부가 추구하는 건강보험의 재정 안정인지 의문스럽다”며 “현 정부는 건강보험 관련 정책들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줄이고 그것을 그대로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건보노조는 이어 “국민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건강보험 사회안전망 기능과 역할이 축소되지 않고 확대될 수 있게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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