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건강관리' 앱 장애, 빅데이터 플랫폼 '6개월 대기' 기본
건양의대 김종엽 교수 "정부 서비스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의료계 '전송요구권' 우려에 공공기관 시스템부터 개선을

"내 건강정보, 내가 직접 활용한다."

정부가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 일환으로 지난 2021년 2월 출시한 '나의 건강기록'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 수기를 공모하면서 내건 주제다. '나의 건강기록'은 본인의 진료·검진·투약 등 건강기록을 스마트폰으로 한눈에 확인하고 통합적으로 활용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출시 2년이 지난 지금 앱은 '개점휴업' 상태다. 데이터 업데이트가 제 때 되지 않고 접속도 원활하지 않다. 앱 다운로드를 제공하는 구글 플레이스토어 리뷰란에는 "정부 기관이 (만든 앱이)니 이렇게 엉터리인 거냐", "접속도 안 되는 앱을 왜 만들고 홍보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건양의대 정보의학교실 김종엽 교수는 "한국 의료 분야 마이데이터 사업은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대한의료정보학회 총무이사이기도 하다.

건양의대 정보의학교실 김종엽 교수는 지난 24일 의료메타버스학회에서 보건의료 마이데이터 사업 현황과 문제를 짚었다(ⓒ청년의사).
건양의대 정보의학교실 김종엽 교수는 지난 24일 의료메타버스학회에서 보건의료 마이데이터 사업 현황과 문제를 짚었다(ⓒ청년의사).

지난 24일 의료메타버스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보건의료 마이데이터와 의료계의 경험'을 주제로 발제를 맡은 김 교수는 '나의 건강기록'으로 첫머리를 열었다. 김 교수 발언에 회장에 모인 몇몇 청중이 그 자리에서 앱을 구동했다.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일반 국민 대상 서비스뿐만 아니다. 보건의료 분야 연구자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에서 결합한 공공기관 보건의료데이터를 받으려면 6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 김 교수 본인도 8개월째 데이터 수령을 기다리고 있다. 실험 전 데이터로 먼저 연구를 검증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던 연구자들은 "차라리 기초실험부터 하는 게 더 빠르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교수는 "플랫폼 사업 출범 당시는 한 달 안에 데이터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6개월, 8개월을 기다리고도 제대로 데이터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며 "연구에 착수하는 데만 1년이 걸린다.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시의성 있는 주제는 연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 상반기 ‘건강정보 고속도로(마이 헬스웨이)’ 사업 참여 기관을 860개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체 7만3,000개 의료기관 1.1% 수준이다.

최근 '나의 건강관리' 앱 구글 플레이스토어 리뷰란은 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최근 '나의 건강관리' 앱 구글 플레이스토어 리뷰란은 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송요구권' 의료계 우려 여전…"정부 서비스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마이데이터 사업 근간인 데이터 전송에 대한 의료계 우려는 여전하다. 지난 2022년 10월 의료데이터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전송요구권)을 포함한 '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디지털 헬스케어 진흥법)'이 발의되자 대한의사협회 등 5개 보건의약단체는 "국민 건강과 개인정보 보호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반대했다.

전송요구권은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작동하기 위한 핵심 요소다. 정보 주체(환자)가 의료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본인이나 제삼자에게 보내도록 요구하려면 전송요구권이 있어야 한다. 전송요구권에 대한 법적 토대가 마련된 금융계에서 '토스'나 '뱅크샐러드'는 되고 그렇지 못한 의료계에서 '나의 건강기록'은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김 교수는 "의료계 입장에서 아무런 지원이나 혜택 없이 환자 요구에 따라 병원 데이터를 넘기는 것은 당연히 부담된다. 전자의무기록(EMR) 도입 당시도 인센티브를 거론했지만 지금까지 책정되지 않았다. 의료계로서는 마이데이터에서도 이런 일이 재현될까 봐 우려하고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 반대가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봤다. 정부가 내세웠듯이 국민이 이제 "내 건강정보를 내가 직접 활용하겠다"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의 공공 보건의료데이터 결합 제공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아 연구 활용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의 공공 보건의료데이터 결합 제공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아 연구 활용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의료계가 마이데이터 시대를 맞이할 준비조차 안 돼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의료데이터 저장 창고 역할을 하는 'CDW(Clinical Data Warehouse)'를 구축한 기관이 3,000개에 못 미친다고 추산했다. 상당수 대형병원이 최근에야 CDW 구축 사업에 들어갔다. 일차 의료기관이나 2차 병원에 마이데이터 활용을 위한 시스템 구축을 요구할 수도 없고 의료기관이 이를 구축할 여력도 없다.

김 교수는 정부 서비스부터 제대로 만드는 게 순서라고 했다. 공공기관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여건을 개선해 사용 경험을 확대하고 의료계도 그 필요성과 시급성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여건이 되지 않는) 의사를 무조건 설득하고 법 만들어서 끌고 가기보다는 공공기관 데이터부터 제대로 확보해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처럼 복지부 산하 기관마저 서로 데이터 교류가 어려운 상황만큼은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금 한국은 웬만한 병원 홈페이지보다 정부 민원 사이트가 오류도 나지 않고 더 편리하다. 최소한 병원 서비스가 동사무소(행정복지센터)보다 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계도 이에 대해 함께 숙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