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안팎 분쟁 방지 제도 장치 마련
영국, '실수' 수용하고 재발 방지 초점
"살리려 끝까지 매달린 의사 기소하는 한국"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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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매일 의사 2명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법정에 선다. 영국에서 1년 동안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되는 건수보다 많다.

지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영국에서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돼 유죄 선고된 건수는 7건이다. 이 가운데 4건이 유죄가 확정됐다. 기소 대신 경찰이나 검찰 조사 단계에서 마무리 된 경우는 128건이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같은 기간 한국에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의사가 유죄 판결을 받은 건수는 670건에 이른다.

고대의대 의학교육학교실 박현미 교수는 의료과실과 분쟁에 대응하는 영국의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인식이 이런 차이를 만든다고 했다. 박 교수는 지난 6일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의료윤리연구회 세미나에서 영국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국도 이러한 인식 전환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지난 2002년 버밍엄의대를 졸업한 후 노팅엄대학병원 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재영한인의사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병원 안팎으로 분쟁 방지 제도 마련…비난보다 재발 방지 초점

영국은 병원마다 환자를 위한 상담·연락서비스인 'Patient Advice and Liaison Service(PALS)'를 운영한다. 환자·보호자가 병원 의료서비스 이용 중 느끼는 불만이나 어려움을 접수한다. 환자·보호자와 의료진·의료기관 사이 소통 부재나 마찰로 인한 의료분쟁 발생을 사전에 방지한다.

부검 절차를 다루는 검시관 제도 차이도 크다. 영국은 국가가 부검 담당 검시관을 지정한다. 변호사나 검사 출신 법조인이 맡는다. 암 3~4기 환자나 완화의료 환자 등을 제외한 사망자는 검시관이 부검 여부를 결정한 뒤 장례 절차를 밟는다. 병원 밖 사망도 예외는 없다. 수술 경력이 있는 환자가 사망한 경우도 대상에 포함된다.

박 교수는 지난 2014년 의료과실로 사망한 가수 신해철 씨 사례를 들면서 "(의료과실이 의심되는데) 장례 절차를 밟다가 가족과 지인 등을 통해 부검을 결정하는 일은 영국에서 있을 수 없다. 영국은 부검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을 검시관이 한다"면서 "이 검시관 제도가 가져오는 차이가 상당하다"고 했다.

한국은 영국 의사면허관리기구인 'General Medical Council(GMC)'에 상응하는 기구나 제도가 없는 점도 지적했다. GMC는 의료 윤리에 입각해 이를 위반한 의사 면허를 정지·취소한다. 연평균 150명 이상이 이같은 징계를 받는다. GMC 징계는 법정 소송과 별개다. 진료 현장은 물론 사적 영역에서 윤리에 어긋난 행위를 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의사의 잘못을 비난하기보다 재발 방지와 후속 대책 마련에 초점을 맞춘 병원 문화 정착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동료 의료진은 물론 환자·보호자의 이해도 필요하다.

박 교수는 "치료 과정에서 본인 실수를 발견한 의사는 이를 의료진과 환자·보호자에게 즉시 알린다. 어떤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는지 명확히 밝히고 이에 대한 치료 대책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의료진은 재발 방지법을 토론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의료진도 인간이기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이를 어떻게 헤쳐나가느냐가 중요하다. 그 실수를 바로잡고 공유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직한 실수' 수용할 줄 알아야…"거꾸로 가는 한국"

고대의대 박현미 교수는 지난 6일 의료윤리연구회 세미나에서 최선의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직한 실수'를 사회가 수용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청년의사).
고대의대 박현미 교수는 지난 6일 의료윤리연구회 세미나에서 최선의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직한 실수'를 사회가 수용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청년의사).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정직한 실수'를 수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했다. 영국 사법부는 6세 소아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의료진의 '정직한 실수'를 인정했다. 박탈한 의사 면허도 복구했다.

정직한 실수와 주의의무 등을 위반한 경우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의사 자문을 구한다. 환자가 사망한 진료과 전문의 8~10명에게 해당 사례를 제시하고 의견을 듣는다. 의사의 눈을 통해 "실수와 살인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의료진을 보호"하는 장치다.

따라서 한국도 이처럼 의사의 행위에 대한 처벌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모호한 기준 속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환자·보호자의 불신만 키운다고 했다.

박 교수는 "지금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말 처벌이 필요한 의사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려고 끝까지 매달린 의사들이 잡혀들어간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의사가 잘못을 해도 풀려나고 면허를 돌려받는다고 생각해서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 교수는 "영국에서는 의사가 무슨 일을 해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최선을 다한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인지 아니면 명백한 잘못인지 명확히 따져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오류를 저지른 의사를 고소하고 기소하는 것이 반드시 더 안전한 의료 시스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기소는 결국 환자 피해로 이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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