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의 익명 인터뷰 시리즈② 병공의
부적절한 민간병원 공보의 배치 문제 개선 안돼
"응급환자 받는 게 의사 양심에 어긋날 수준"

공중보건의사는 40년간 공공의료 한 축이자 최전선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근무 환경에 대한 문제도 40년간 이어졌다. 그러나 공무원이라는 신분과 특수한 근무 여건으로 신상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청년의사는 공보의 근무 환경을 진단하기 위해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와 함께 익명 인터뷰를 기획했다. 공보의 4명이 응했다. 섬 지역에 근무하는 이른바 '섬보의'와 민간병원에 근무한 '병공의', 지역 의료원에 있는 공보의들이다. 인터뷰는 유선으로 진행했다. 당사자 허락을 받아 신상과 관련된 내용은 각색했다.

공중보건의사 B씨는 지난 20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병공의'로 일한 4개월 동안 지역 의료계의 악습을 마주했다면서 공보의 근무지에 대한 투명한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중보건의사 B씨는 지난 20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병공의'로 일한 4개월 동안 지역 의료계의 악습을 마주했다면서 공보의 근무지에 대한 투명한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북 지역 A병원 응급실은 오후 6시가 지나면 '무늬만' 응급실이 된다. 응급실에서 기본으로 통하는 혈액검사가 안 된다. 내시경 검사는 물론 수혈도 어렵다. 119구급대는 인근 종합병원으로 차를 돌린다. 응급하지 않은 환자만 응급실을 찾는다.

A병원은 24시간 응급진료를 표방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담당 의사는 꼬박 24시간 근무한다. 야간근무 교대 스케줄은 시간 단위가 아니라 주 단위다. 교대할 의사가 없다. 그나마도 임상병리사 같은 다른 야간근무 인력을 못 구해 이들이 퇴근하면 진료가 제한된다.

이런 사정에도 A병원이 '지역 응급의료체계 한 축'을 맡은 건 공중보건의사 덕택이 크다. A병원은 봉직의 1명과 보건복지부에서 배치한 공보의 1명으로 응급실을 운영했다. 직선거리 1.5km에 응급진료센터 담당 전문의만 6명인 종합병원이 있지만 A병원은 '의료취약지 응급진료를 위해' 공보의를 받았다.

이 병원에서 일했던 공보의 B씨는 열악한 응급실 상황을 되돌아보며 "응급환자 받는 게 의사 양심에 어긋날 수준"이었다고 했다. 주 116시간을 근무했지만 "공보의로서 지역 주민에게 꼭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자부심이나 효능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밤새 응급실을 지켜도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한 '진짜 응급환자'는 거의 없었다. 119구급대는 인근 종합병원 수용이 어렵거나 '그다지 급하지 않은' 환자만 데려왔다.

"병원에서는 응급실이 위중한 환자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길 원했어요. 그 편이 병원 매출에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런 환자를 감당할 수 없었어요. 119구급대가 환자를 실어오면 '우리 병원은 그 환자 못 보니까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는 게 그나마 의사로서 양심을 지키는 일이었죠."

'어차피 떠나는 외부인'…열악한 환경 해결 없이 피해만 반복

의료취약지 응급진료를 위해 민간병원에 배치되는 공보의, 일명 '병공의'는 복무 기간 3년 대부분 한 곳에서 보낸다. 그러나 지난 2년간 A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한 공보의는 모두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 B씨는 약 4개월 만에 근무지를 옮겼다. 주 100시간 넘는 노동 강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보상에서 갈등이 시작됐다. 제대로 된 진료조차 어려운 응급실 환경에서 병원 매출 압박도 B씨를 힘들게 했다.

처음 공보의 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역 주민과 소통하며 공공의료에 매진하는 '평범한' 공보의 생활"을 꿈꿨다. 3년 동안 일하게 될 근무지 여건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알 방법도 없었다. B씨 앞에 근무한 공보의가 똑같은 문제로 1년도 되지 않아 그만뒀다는 사실 역시 A병원에 오고서야 알았다.

근무 초반부터 시작된 갈등이 계속되자 B씨는 보건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근무 조건을 두고 마찰이 있으니 중재를 부탁하면서 불합리한 여건을 바로잡아 달라고 했다. 그러나 도움을 구하는 B씨의 호소에 "민간 기관과 의사 개인 계약 문제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현지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보건소가 나서지 않으면 당장 기댈 곳이 없었다. B씨는 다시 한번 중재를 요청하려고 했다. 그러나 병원장과 웃으며 악수하는 보건소장을 보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B씨가 연락한 보건소는 A병원과 불과 한 블록 떨어져 있었다. 보건소장과 병원장 사이는 그보다 더 가까웠다. 두 기관은 지난 수십 년간 지역 의료계에서 공조해왔다. 병원장에게도 보건소장에게도 공보의는 "길어야 3년 머물다 떠나는 외부인"에 불과했다.

국민 신문고로 민원을 제기해 복지부와 도청이 직접 조사에 나서고 나서야 다른 근무지로 이동하게 됐다. 짐을 꾸리는 B씨 마음은 무거웠다. 보건소를 비롯해 지자체부터 정부까지 어느 한 곳도 공보의 업무 환경과 안전에 신경 쓰지 않았다. B씨는 그 태도가 마치 "일거리만 주고 뒷일은 나 몰라라 하는 '인력사무소'" 같았다고 했다.

"공무원 신분으로 근무지를 배치하고서 정작 근무 여건이나 계약은 민간인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태도였죠. 하지만 국가는 인력사무소가 아니잖아요. 공무원이라면 국가가 책임지는 사람이고 어느 수준 이상의 균등한 노동 환경은 보장해야 옳지 않을까요."

B씨의 배치를 철회한 A병원은 불합리한 근무 여건을 고치겠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2년 연속 공보의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복지부도 지자체도 A병원 정원을 박탈하거나 응급실 운영 개선을 명하지 않았다. 변하는 건 없었다. B씨가 떠나면 그 빈 자리는 또 다른 공보의가 와서 채우게 될 것이다.

공보의 근무지 적정성 투명하게 평가해야…구조적 문제도 숙제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지난 2019년 대공협이 공개한 '민간병원 근무 공보의 실태조사'에서 많은 병공의가 민간병원에서 공공의료를 펴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상당수 병원이 '의료취약지'가 아니면서 공보의를 배정받았고 응급진료보다는 수익성 진료에 몰두했다. 조사에 참여한 병공의 47%가 근무하는 병원에 추후 공보의 배치를 해선 안 된다고 했다.

4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B씨 역시 당직 의사 대신 입원환자를 돌보고 '수익 나는' 진료를 더 하라는 압박에 시달렸다. 병원은 공보의 한 사람에 응급실 운영을 기대면서 인력을 추가 채용하거나 시설을 보강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B씨는 공보의를 배치하는 민간병원 적정성 평가를 통해 정원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선정 기준과 평가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의료취약지가 아니거나 기준에 미달하는 곳은 정원을 감축하거나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보의를 배치하는 응급실이 실제 응급의료기관으로서 기능하고 공공의료 수행이라는 제도 취지에 부합하는 환경을 갖췄는지 다시 한번 평가할 때입니다. 질 관리는 어떻게 하고 인력 운영은 어떻게 해왔는지도 중점적으로 들여다봐야죠. 이를 종합해 배치 근무지를 선정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합니다."

다만 A병원 같은 문제 사례를 단순히 특정 병원의 탈선이나 부패로 전가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다. 공보의 혼자 응급실을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더 이상 병원 혼자 응급의료 환경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제가 겪은 어려움은 의도적인 괴롭힘이 아니었어요. 병원장이 어떤 악의를 가지고 저를 대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니에요. 다만 공보의를 통해서라도 응급실을 운영할 수익을 내야 하는 상황에 빠져 있는 거죠. 근본적으로 지역 병원 혼자서는 수익을 낼 수 없는 응급의료 현실을 고쳐야 합니다. 앞으로 정부가 풀어야 할 구조적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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