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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증상을 느껴 병원에 입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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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증상을 느껴 병원에 입원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1.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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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고 결정적 한 방을 먹이려는 쪽에서는 더 절실했다. 훈련을 할 수 없는 병사는 군인이 아니라 그냥 민간인에 불과했다.

총을 쏠수도 수류탄을 던질 수도 없다면 어렵게 구한 무기는 무용지물이다. 주석이 급하게 말수를 찾은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발사가 안되는 권총을 재조작해 빠른 시간내에 조준할 수 있는 능숙한 총기 기술자가 필요했다.

총보다 더 위험한 물건인 수류탄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다이너마이트는 교관이 없다면 쓸모없는 짐짝에 불과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주석이 교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때 말수는 그 기다림에 빠르게 보답했다.

휴의의 빈자리를 말수가 채운 것이다. 휴의가 떠나기 전에 은밀하게 교육했던 요원은 훈련 중에 불발탄으로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 참관하던 다른 요원까지 부상을 입게 되자 광복군사령부는 맥이 빠졌다.

말수는 가뭄의 비였다. 끊어진 맥을 잊고 다시 원기를 보충하기 위한 절대 영양소였다. 그 중에서 다이너마이트 전문가는 절망에 빠진 구원자였다.

다이너마이트의 파괴력은 이미 한 차례 실험에서 입증했다. 현장에서 그것은 더 위력을 발휘했다. 총이나 수류탄과는 비교 대상이 될 없을 정도였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미리 정해 놓고 원하는 시간에 폭발하도록 한 시한폭탄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권총의 분해와 결합 같은 실력으로는 안 됐다. 그 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기술과 담력을 필요로 했다.

위력이 큰 만큼 위험 부담도 배가됐다.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것을 감지하고 주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 분야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에게도 엄청한 충격을 가져온 파괴력에 아군은 자신감이 차고 넘쳤고  적은 두려워했다. 아군으이 사기는 속된 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적들은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포 때문에 적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으나 속으로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평소와는 달리 몸을 떨었다. 특히 고관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천장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조선 총독은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악몽 때문에 제대로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낮에는 천장이 없는 곳으로 피신했으며 밤에는 벽돌 더미를 받쳐줄 식탁 아래에 침구를 깔았다.

그는 이것은 미신이 아니다,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믿어도 좋고 아니면 말고식의 섣부른 판단은 죽음을 의미했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죽음과 맞딱뜨리는 생활을 했다.

조회를 하면서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그 아래 깔려 죽는 자신의 신세를 눈 앞에서 떠올려야 했다. 더 두려운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있었다.

장소는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으나 시간은 그러지 못해 일제는 조선인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펼쳤다. 무지렁이 존재로 알고 밟고 비틀던 습관이 하룻만에 피해야 하는 버러지 같은 존재로 부상한 것이다.

더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바퀴벌레를 밟아 죽이기 전에 느끼는 순간의 공포는 상당한 것이었다.

상대에게 줄 줄만 알았던 공포가 자신들에게도 오자 그들은 비로소 공포가 갖는 위력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은 쉽게 극복되지 않았다.

무리가운데 누구의 품속에 폭탄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어 그들은 되레 인파를 피해 가려고 했다. 위험한 자를 발견하면 검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서 그자가 자기의 관할 구역을 벗어나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이 오면 그 지역 책임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만 보아도 일제는 조선땅에서 전염병처럼 번지는 공포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자들은 증상을 느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그런 자들 가운데는 공포를 조장했던 경찰이나 군인들도 있었다. 한 동안 공포에 빠졌던 그들은 꾀 하나를 발견해 냈다.

공포를 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익숙한 공포를 다시 시작했다. 공포몰이를 통해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고문은 날로 심해졌고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공포는 줄어들지 않고 되레 강해졌다. 어떤 날은 온몸에 종양처럼 돋아나는 공포를 잊기 위해 길가는 사람 아무나 잡아들여 불에 달궈진 인두를 찾거나 급한 나머지 길가 아궁이의 장작불을 집어 들었다.

조선천지는 공포가 지배했고 그 공포의 강도는 하늘을 덮을 지경이었다. 극단의 끝에는 또 다른 극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흰옷 입은 사람들은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며 자구책 마련에 들어갔다.

산속으로 숨어들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서기 위해 비밀결사에 참여했다. 공포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일어난다고 해도 천천히 조심스러운 방법으로 진행됐을 것이었다.

겸손했고 순박했던 흰옷입은 사람들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더는 공포에 질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공포를 조장했던 것이다. 공포에 공포로 맞서자 한반도는 온통 공포 천지였다.

일제는 원래와는 다른 방식의 도전에 새로운 대책으로 또다른 공포를 조장했다. 이른바 대공포였다. 공포 가운데 가장 무서운 대공포가 시작됐다.

군인들의 시가행진은 정해진 시간이 없었고 착검한 총검은 붉은 피가 마를 새가 없었다. 그들은 규모가 큰 독립군이 만주에서 조선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거짓 소문을 퍼트렸다.

그들과 사전에 교감하려는 자들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명분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닥치는 대로 착검돌격을 하던 그들은 어느 날 조용해졌다.

거짓 소문을 진실로 믿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런 식의 공포정치는 역효과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거짓이 진실로 되어 가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 공포를 추가했다.

공포를 주기 위한 것이 되레 공포를 받는 꼴이 된 것이다.

그래, 상하이에서 독립군이 오면 너희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그러니 우리도 안에도 웅끄리고만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화답하자. 흰옷 입은 사람들이 소규모에서 대규모로 뭉치고 있었다.

탄압의 원인이 모래알을 진흙더미로 만든 것이다. 있지도 않은 불순불자를 잡겠다고 다수의 불순분자가 암약하고 있다고 퍼트린 것이 안좋은 결과로 나타나자 그들은 대공포를 중단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게됐다. 만주의 조선독립군이 무장이 완료되는데로 두만강과 압록강을 거쳐 조선 반도로 진격한다는 첩보가 입수됐기 때문이다.

흰옷 입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군복입은 사람과 싸워야 한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과 무장 군인과 싸워야 하는 것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일제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학살을 멈추고 광복군을 상대로 대학살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준비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들이 정한 학살의 일차 저지선은 내륙이 아닌 강이어서 싸움은 만만하게 흘러갈 수 없었다. 

도강 직전에 섬멸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정하긴 했으나 적들을 섬멸하기 전에 자신들이 섬멸될 지 모른다는 위기에 봉착했다. 그들에게는 병력이 필요했다.

늘 부족한 것이 병력이었으나 최근들어 그것은 더욱 부족했고 따라서 그들은 새로운 친일 경찰을 대거 발족하기로 마음 먹었다. 경찰의 추천만 있으면 누구나 일제 경찰이 됐고 총을 지급 받도록 절차를 간소화했다. 

일제의 이런 대책은 규모를 늘린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일부는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속된 말로 개나 소나 일제 경찰이 된 것이다. 그 가운데는 일제에 목숨을 잃은 가족의 일부도 포함이 됐는데 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반감을 가졌다.

내부총질이 시작될 씨앗을 심은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제는 경찰 완장을 남발했다. 규모의 경찰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작은 것을 잃더라고 큰 것을 얻는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총대는 종로서가 맡았다. 총대장은 서장인 동휴였다. 그는 지나가는 김씨나 이씨가 일제 경찰이 되는 것에 불만이었으나 상황이 급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 한 달 내에 3천 명의 경찰조작을 만들라는 특명이 떨어졌고 그들을 이끌고 한 달 후에 바로 압록강에 가야 한다. 거기서 그들은 남하나는 조선독립군과 일대 격전을 벌여서 승리해야 한다.

동휴에게 맡긴 임무는 조선의 독립과도 직결된 것이었다. 압록강과 두만강이 뚫리면 조선으로 들어오는 독립군을 막아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려오면서 토착 독립군과 합세할 것이 분명했다.

2개 사단은 곧장 3개 사단으로 세를 불리고 곧 군단 규모가 될 것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독립군이 평양과 개성을 거쳐 경성에 오면 일제는 도주 밖에 다른 살 궁리는 없다.

동휴는 일제가 그런 암시를 주지 않아도 벌써부터 자신이 밀리고 밀려 경성까지 방어선을 후퇴한 처지를 상상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때로는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 인간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동휴는 그것을 받아 들일수 없었다.

그래서 애초 3천명 규모의 신입 경찰 모집을 그 세 배가 넘는 1만 명으로 하겠다고 총독부에 보고했다. 식탁아래에서 꼼지락 거리던 총독은 그것은 조선 사정에 밝은 조선사람인 종로서장이 판단할 문제라고 전권을 일임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릴세.

총독의 이런 하달을 받은 동휴는 걸어가다 걸리는 자들에게 즉석에서 경찰 완장을 채워주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어떤 날은 종삼에서 종각까지 걸어가는 동안 300명의 신규 경찰을 채용해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날 동휴는 피곤했다. 경찰력이 늘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이래도 좋은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이런 자들에게 총을 주고 돌격 앞으로를 명령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조차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혼란은 완장을 찬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완장을 내려다 보던 신임 경찰은 흰옷이 상자에 쌓여 자기집으로 배달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긴가민가 했다.

그러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대충 총 쏘기 훈련을 마친 동휴의 대규모 경찰병력이 기차를 타고 조중 국경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삼일만에 훈련병 기간을 끝내고 기간병이 된 그들은 손에 잡은 총을 놓치도 못하고 연신 식음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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