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전문의 A씨, 수차례 근무조건 문의 후 포기
“하루 80명 진료에 응급실·검진도 담당해야”
“계약서에 업무범위 구체적 명시 요구했지만 거절”

내과 전문의 A씨는 최근 산청군보건의료원 채용 공고를 보고 연락했다가 지원을 포기했다(ⓒ청년의사).
내과 전문의 A씨는 최근 산청군보건의료원 채용 공고를 보고 연락했다가 지원을 포기했다(ⓒ청년의사).

취직할 곳을 찾던 내과 전문의 A씨는 주 5일 근무에 연봉 3억6,000만원을 준다는 산청군보건의료원 채용 소식을 접하곤 지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13일 산청군보건의료원에 연락해 근무 조건 등을 수차례 문의했다. 그리고 지원을 포기했다. 연봉 3억6,000만원에 가려진 업무 부담이 컸으며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도 개인이 져야 했기 때문이다.

산청군보건의료원은 외래 환자를 하루 평균 80여명 진료하면서 내시경과 초음파 검사도 해야 한다고 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주말이나 공휴일, 야간에 응급 환자를 봐야 한다고도 했다. 근로계약서는 따로 없었다. ‘산청군보건의료원 지역보건의료사업 업무대행에 관한 조례’에 따라 업무대행계약서를 작성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계약서에는 ‘업무와 관련한 산청군수의 정당한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과 ‘산청군수를 피보험자로 하는 손해보험을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산청군보건의료원 담당자와 통화할 때마다 담당해야 하는 업무 범위도 늘었다. 처음에는 주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근무하면 되고 주말이나 야간 당직도 없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말이 바뀌었다. 현재 산청군보건의료원에는 원장과 공중보건의사 7명(한의사 제외)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지만 조만간 4명이 복무기간이 끝난다.

다음은 A씨가 보내온 산청군보건의료원과 통화한 내용이다.


A씨: 일반 내과(전문의)도 지원 가능한가요? 아니면 내시경이나 투석진료가 가능한 소화기내과나 신장내과 전문의여야 하나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장비가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 장비, 위 내시경 검사 장비인데요. 일반 내과를 구하긴 하는데 오시면 내과 관련 진료를 종류별로 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A씨: 일단 내시경 검사 장비를 다룰 수 있는 의사를 더 선호한다는 건가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네.

A씨: 그곳에 가면 어떤 진료를 해야 하는 건가요? 외래와 입원 환자 모두 보게 되나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입원 환자는 없고 외래 진료만 하면 됩니다. 우리 근무 조건이 좋아요.

A씨: 하루 외래 환자는 몇 명 정도인가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하루 평균 150명 정도 됩니다. 그 중 60~70%는 당뇨 등 만성질환자에요. 내과에서는 하루 80명 정도 진료하면 될 겁니다.

A씨: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좋다고 했는데 외래 진료 외에도 내시경이나 초음파 검사도 같이 해야 하는 건가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그렇죠. 그 안에서 업무를 보는 겁니다.

A씨: 응급실도 운영하고 있나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네, 있습니다. 응급실에는 따로 의사가 있습니다.

A씨: 제가 근무하게 되면 응급실 업무에는 관여할 필요가 없는 건가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뭐 따질 수는 있어도 관여하지는 않아도 되요.

A씨: 채용 공고를 보니 야간 당직이 없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면 된다고 돼 있던데, 맞나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맞습니다.

A씨: 알겠습니다. 산청군으로 가게 되면 연고지를 바꿔야 해서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근무 조건 확인하기 위해 다시 연락)

A씨: 아까 응급실 진료를 아예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놀랐는데 맞나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응급실에 공보의들이 있는데 사람이 빠진다든지 하면 한번씩 가서 근무해야 할 것 같아요. 야간은 아니고 주간에.

A씨: 그렇다면 하루에 외래 환자 80명씩 보면서 응급실 근무도 같이 해야 되는 건가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응급실에 의사가 없다든지 하는 특별한 상황이 생기면 한번씩 봐줘야 한다는 거지 거기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A씨: 그런 일이 얼마나 자주 있을까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그건 모르겠어요.

A씨: 하루에 외래 환자 80명을 진료해야 했는데 만약 응급실에 공보의가 없는 날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응급실에는 24시간 공보의가 있거든요. 그런데 혹시 그 사람들에게 특별한 일이 생길 경우 근무를 대신 해줄 수 있다는 겁니다.

A씨: 근로계약서 작성할 때는 이런 내용이 어떻게 반영되나요? 외래 진료를 하고 응급실에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진료를 보조할 수 있다고 명시되나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아마 그렇게 들어갈 겁니다.

A씨: 그렇다면 근로계약서에 야간 당직이나 주말 근무는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들어가나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그렇게는 안될 겁니다. 야간 당직을 하지는 않겠지만 비상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A씨: 근무 조건은 계약서를 봐야 상세히 알 수 있겠네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현재 계약 조건을 만들어 놓은 게 없어요. 그것도 만들어야겠네요.

이후 산청군보건의료원 측은 ‘산청군보건의료원 지역보건의료사업 업무대행에 관한 조례’에 따라 업무대행자로 계약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례상 업무대행계약서 확인 후 다시 연락)

A씨: 말씀해주신 업무대행계약서를 보니 업무 관련 부분이 비어 있던데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나중에 계약할 때 거기에 어떤 업무를 맡게 되는지 넣으면 됩니다.

A씨: 그렇다면 그 부분에 외래 진료와 유사 시 응급실 업무를 보조한다는 내용이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그렇죠. 업무 범위 관련해서는 지금 정해진 게 없는데 나중에 원장님과 이야기 하면 됩니다.

A씨: 이 부분을 계속 말씀드리는 이유가 업무 범위를 좀 더 명확하게 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응급실 근무도 얘기하다가 나온 거여서요. 그리고 계약서 제6조를 보면 ‘업무대행자는 업무와 관련한 산청군수의 정당한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돼 있는데요. 예를 들어 산청군보건의료원에 공보의 배치가 줄고 군수가 저에게 응급실 진료도 하라고 하면 계약서에 따라서 제가 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아닙니다. 업무 범위는 정하면 됩니다.

A씨: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주면 되지 않나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논의해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업무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정확하게 내과 업무가 어디까지인지 몰라서 답변을 못하겠더라고요. 위내시경과 초음파는 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요.

A씨: 내시경 검사를 해야 하는 건가요? 제가 초음파 검사를 할 수 있는데 내시경은 따로 교육을 받아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초음파 검사를 하는 날은 외래 환자 80명을 다 진료할 수 없을 텐데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환자가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습니다.

A씨: 잘 지나가면 문제없는 하루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는 날이 생길 수도 있죠. (의료사고 등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으니 업무 범위 등을 명확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상황에 따라 너무 많이 바뀔 수 있는 것 같아요.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 내과라고 해서 딱 잘라서 내과 진료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진료하다가 외과 선생님이 없다고 하면 봐줄 수 있지 않을까요? 본인이 할 수 있는 데 까지만 하면 되는 겁니다. 더 이상 바라지 않아요. 계약서에 내과 진료 하나만 넣을지 아니면 ‘내과 진료 외’로 할지는 원장님에게 물어보고 연락을 드릴게요.

A씨: 저도 생각을 좀 더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A씨는 업무대행계약서에 손해보험을 별도로 가입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A씨는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업무 범위를 구체화해 달라고 했더니 자꾸 말이 바뀌었다”며 “군수가 어떤 일을 시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업무대행계약서에는 군수의 지시를 성실히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돼 있더라. 굉장히 불리한 계약 조건”이라고 말했다.

산청군보건의료원 근무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A씨는 “채용 공고에는 자세한 내용이 없었다. 손해보험에 개인이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도 없었다”며 “어떤 직장이 계약을 이런 식으로 하느냐”고도 했다.

A씨는 “이런 곳에 가고 싶어 하는 의사는 없을 것 같다. 연봉을 5억원 이상 준다고 해도 저런 조건이면 갈 생각이 없다”며 “높은 연봉을 제시했는데도 지원자가 없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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