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마취의사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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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마취의사를 하겠다"
  • 윤종원 기자
  • 승인 2022.12.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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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마취과 의사의 잠들지 않는 삶 ‘신정순 평전’ 발간
딸 김애리 교수 집필 "어머니의 참 모습을 전하고 싶었다"
'신정순 평전' 저자 김애리 교수
'신정순 평전' 저자 김애리 교수

“죽어서 다시 태어나 다시 의사가 되는 영광이 있다면 다시 마취의사를 하겠다.”

우리나라 첫 여성 마취과 의사의 잠들지 않는 삶 ‘신정순 평전’이 최근 발간됐다.

이 책은 그의 외동딸인 김애리 고려대 구로병원 병리과 교수와 윤정환 역사학자가 함께 저술했다.

12월 19일 병원신문과 만난 김애리 교수는 어머니를 회상하며 몇 번씩 눈시울을 붉혔다.

“인공호흡기조차 부족한 시절, 어머니는 손에 물을 묻혀가며 암부 백을 사용한 수동인공호흡을 하면서 환자의 호흡을 유지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의 손은 늘 거칠고 두꺼웠다. 병석에 누우시고서야 손이 부드러워졌다는 남편의 추도사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이 책은 한 번 보면 쉽게 놓지 못한다. 진귀한 사진과 기록들이 많은 페이지를 차지한다.

개인사(史)에 머물지 않고 한국 의료 근대사를 기술한 듯하다.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국립의료원의 탄생과 초기 운영상황, 덴마크 유학, 마취과전문의 양성, 은퇴 후의 일상이 연대순으로 기록돼 있다. 그리고 가족 이야기까지 소개한다.

김애리 교수는 2010년 세상을 떠난 신정순 교수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수많은 편지와 사진, 각종 서류를 보면서 우리나라 역사를 함께 한 어머니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싶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고려대 의과대학에서 교수와 제자로 지내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주위에서 어머니를 ‘굉장히 피하고 싶은 사람’, ‘만나기만 하면 꼬투리 잡는 사람’으로 평가하니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말을 돌려서 하는 스타일로 잘 생각해야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화법을 가졌다. 좋은 뜻의 말도 쉽게 알아듣게 말하지 않고, 대화중에 뚝뚝 끊어서 이야기 하는 경향이 있어 상대방으로부터 오해를 많이 샀다.

이 책을 통해 어머니의 참 모습을 전하고 싶은 게 김 교수의 솔직한 심정이다. 3년 간 책을 준비하며 자신 또한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됐다고 한다.

신정순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시기에 서울여의전(고려대학교 전신)에 재학 중이었다. 대학 졸업 후, 의사 초년기를 미군병원과 스웨덴 적십자병원에서 근무하며 서구의 선진 의학시스템을 경험했다. 그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외과의사가 되려 했으나, 스웨덴의 마취과 전문의 노던(Norden)을 보면서 외과와 밀접한 마취과를 선택하게 된다.

한국전쟁 발발 후 우리나라에 의료지원으로 개원한 스웨덴적십자병원의 철수에 이어 스칸디나비아(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3국의 인적, 경제적 지원으로 아시아 최고의 국립의료원을 개원하게 되는데, 신정순은 개원 초기 멤버로 참여하게 된다.

1950년부터 덴마크 코펜하겐 마취의사 연수교육 프로그램에 WHO장학금을 받고 참여해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국립의료원 개원 초기 병원 운영 안정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우리나라에 1년 단위로 파견됐던 스칸디나비아(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의료진과 국립의료원 의료진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했다. 또한, 국립의료원 한국인 최초 마취과장이 되어 수련의(인턴·레지던트)의 서구식 수련프로그램 지침에 따라 우리나라에 맞는 마취과 수련 프로그램을 수립하는데 중심 역할을 했다.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국립의료원의 수련 지침과 각 임상과의 수련 프로그램은 서울대의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따른 전공의 수련시스템과 함께 우리나라 전공의 수련프로그램 큰 축을 이뤘다.

신정순은 국립의료원 의료시스템의 주춧돌이 되었으며 스스로도 마취과 전문의로서 한층 더 큰 성장을 했다.

모교로 적을 옮겨 고려대 구로, 안산, 여주(현재 폐원)병원 개원 당시 3개 병원의 수술실, 중환자실 등의 시스템을 확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동시에 환자 안전을 위해 수술실을 지키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두하는 열정을 보여줬다.

1993년 은퇴할 때까지 마취과학교실에서 후진 양성 및 고려대의료원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정년퇴임 이후에도 후학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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