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좋고 환자가 가족같다"는 신경외과 정연구·홍제범 교수
산업용 현미경 개조해 수술 연습, 주말에도 나와 환자 재활 도와
작지만 강한 강북삼성병원…전임의 등 트레이닝에도 ‘진심’

“우리 병원 신경외과에 미친 의사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강북삼성병원 신현철 원장의 한 마디에 귀가 번쩍 뜨였다. '환자에 미쳐, 수술에 미쳐' 주말도 반납하고 환자를 보기 위해 병원에 나온다는 열정 넘치는 의사들이 신경외과에 참 많다는 이야기였다.

어떤 의사는 응급 뇌 수술을 더 해보겠다고 인근 병원에 전화를 돌려 환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의사는 뇌 종양 수술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재활을 돕겠다며 주말에도 나와 휠체어를 끌어준다는 게 신 원장의 증언이다. ‘미쳤다’는 다소 거친 표현 속에는 환자 치료에 매진하는 후배 의사들을 향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청년의사는 환자에 ‘미쳐있다’는 이야기 속 두 주인공인 강북삼성병원 신경외과 정연구 교수와 홍제범 교수를 만났다. 정 교수와 홍 교수는 강북삼성병원에서도 소문난 ‘칼잡이’다. 그저 ‘사람 살리는 의사’가 퍽 멋있어 보여 신경외과를 택했고, 수술할 때 가장 즐겁다고 한다. 신경외과 의사들 언어로는 ‘Neurosurgery Gene(신경외과 유전자)’이 있는 사람들이다.

강북삼성병원 신경외과 홍제범 교수(왼쪽)와 정연구 교수(오른쪽)(ⓒ청년의사).
강북삼성병원 신경외과 홍제범 교수(왼쪽)와 정연구 교수(오른쪽)(ⓒ청년의사).

환자와 교감하는 의사들 “환자는 나의 가족”

정 교수와 홍 교수를 만나 가장 먼저 한 일은 ‘팩트체크’였다. 평일은 말 할 것도 없고 주말에도 응급 콜이 오면 언제든 병원으로 달려 나올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정 교수가 말문을 열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전임의를 했어요. 후배들이 새벽에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데 중환자실 여유가 없으면 연락을 해오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신경외과 의사들이 지방으로 학회 일정이 있어 다 내려갈 때 서울에 내가 남아 있으면 뇌 수술은 다 하게 되는 거죠.“

수술이 너무 좋아 신경외과를 선택했다는 정 교수는 뇌혈관 수술을 잘 하기 위해 반도체 회사에서 산업용으로 쓰이던 현미경을 수술용 현미경으로 직접 개조해 연습했다.

”혈관문합술을 연습하려면 현미경이 필요한데 일본에서 만든 제품을 알아보니 한 대에 600만원 정도 했어요. 월급도 많지 않은 펠로우 시절 고민하다 반도체 회사에서 사용하던 중고 현미경을 저렴하게 구입해 개조했죠. 심심할 때 고무 튜브도 끼워보고, 남은 인조혈관을 갖고 꿰매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경희대병원에서 근무할 때 동료 의사들과 ‘미세혈관 트레이닝법’을 논문으로 써서 SCI에 게재된 적도 있어요.“

혈관문합술은 한 번 시작하면 6~7시간씩 이어지는 대수술이지만, 그만큼 수술을 마치고 나면 만족감도 크다고.

”환자 수술이 잘 되는 게 가장 좋지만 의사로서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서 열정적으로 수술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케이스일수록 성공하면 만족감은 더 커져요.“

뇌종양 환자를 주로 보는 홍 교수가 수술한 환자를 보기 위해 가끔 주말도 반납하고 병원으로 출근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홍 교수는 “많은 신경외과 의사들이 환자를 그렇게들 본다”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지만 옆에 있던 정 교수가 ‘흔치 않다’며 한 마디 거들었다. 홍 교수는 수술 후 환자 예후를 생각하니 그렇게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수술 후 대변에서 대장균 등이 나오면 격리가 되는데 재활치료를 못 받게 되니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해요. 집에 가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니까요. 어떻게 도와야 할까 고민하다가 비닐 가운을 입혀 휠체어라도 타고 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그게 재활치료 거든요.”

두 교수가 환자 치료에 매진할 수 있는 이유는 환자들이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환자를 스승이자 가족이라고 표현했다.

“수술하는 환자에게 공감하려고 해요. 내게 머리수술을 받은 환자는 내 가족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해요. 또 환자를 통해 엄청난 배움을 익히고 있으니 스승이고요.”

정 교수도 동감했다. 환자들도 큰 수술을 앞두고 의사를 가족처럼 생각해야 믿고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수술장에 누워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는 환자도 있어요. 불안해 하는 환자의 어깨 두드려주며 잘 될 거라고 말해주면 안심 해요. 환자와의 교감이 수술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작지만 강한 강북삼성병원 ‘신경외과’…“전임의 지원 많았으면”

두 교수가 꼽은 강북삼성병원 신경외과 만의 장점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너무 크지 않은 규모가 오히려 장점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홍 교수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우수한 환자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주 큰 병원에도 있어 봤지만 너무 세분화 돼 있으면 의사들끼리도 서로 몰라요. 수술 중 약간이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커뮤니케이션 부재가 더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거든요. 강북삼성병원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서로 모두 잘 알고 있어 어려운 케이스가 잡혀 봐 달라고 요청하면 두 말 없이 봐주는데 그게 참 좋아요.”

아낌없는 지원도 매력이자 장점으로 꼽혔다. 정 교수가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 9억원 상당의 현미경을 샀어요. 병원에서 수술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도 장점이에요. 다른 병원 상급종합병원 중 양적 규모는 가장 작지만 계속해서 유지해 나간다는 것 자체가 의료의 질은 좋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죠.”

이처럼 장점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병원 규모 때문에 전공의나 전임의 지원이 많지 않다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정 교수는 사례 수가 수련교육의 질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큰 병원으로 전임의들이 몰리는 게 아쉬워요. 그곳에서 전임의들은 ‘때 되면 나갈 사람’들로 인식돼 있기도 하죠. 수술 케이스가 많으니, 또 그래야 잘 배운다고 생각해서 큰 병원으로 가지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본은 뇌동맥류 수술 케이스가 우리병원 보다 적은 곳도 많아요. 1년에 100건 하더라도 잘 트레이닝 된 훌륭한 의사를 배출 할 수 있다는 의미에요. 공장처럼 수술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수술 영상을 틀어 놓고 도시락 먹으며 수술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신경외과 인재 양성에 대한 열의도 넘쳐났다. 홍 교수는 ‘아는 사람’ 중 국내 혈관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통 틀어 인터벤션과 수술, 수술 중에서도 고난도 혈관수술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정 교수가 최고라고 추켜세웠다.

손사레를 치던 정 교수는 “뇌종양 환자도 많아지고 혈관 수술 케이스도 많이 늘었어요. 저도 인터벤션, 바이패스 등 다 트레이닝 할 수 있는 내용은 다 갖추고 있어 젊은 전공의나 전임의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큰 병원으로 몰려가지 않고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재양성에도 힘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의미가 있죠.”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