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시기상조?…더 강해진 부정적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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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 시기상조?…더 강해진 부정적 인식
  • 정윤식 기자
  • 승인 2022.07.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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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소아청소년과·이비인후과·가정의학과 의사 2,588명 참여 설문조사 결과 공개
코로나19 탓에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 경험했음에도 거부감과 우려 더 커져
10명 중 7명은 비대면 진료에 부정적…적극적 참여 의지 밝힌 의사 9%에 불과
(사진=연합)
(사진=연합)

코로나19 범유행의 국가재난 상황에 확진자를 대상으로 한시적인 전화상담 및 처방을 직접 경험했음에도 내과·소아청소년과·이비인후과·가정의학과 의사들은 비대면 진료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대한내과의사회(회장 박근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회장 임현택),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회장 황찬호),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회장 강태경)는 4개 전문과목 의사회원을 대상으로 공동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7월 7일 공개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모바일을 통해 진행됐고, 전국에서 총 2,588명의 의사가 참여했으며, 응답자 구성은 1차 의료기관 개업의 2,260명(87.5%), 2차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 원장 323명(12.5%), 무응답 5명(0%) 등이다.

우선, 한시적으로 허용된 전화상담에 참여한 회원은 1,881명으로 72.7%였고 전화상담 후 처방전까지 발행한 비율은 82.8%에 달했지만 대면 진료와 비교해 충분한 진료가 이뤄졌다고 생각한 회원은 7.9%에 불과했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회원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감염병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54.4%로 가장 많았다.

특히 진료의 기본 개념이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비대면 진료를 절대 허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18%에 달해 사실상 비대면 진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72.4%를 차지했다.

이는 응답자 수가 달라 정확한 비교 대상은 아니나, 해당 결과는 지난해 10월 1,079명의 대한내과의사회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약 60%의 회원이 원격의료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한 것과 비교하면 지난 수개월 간 비대면 재택치료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인식이 더 나빠졌음을 보여준다.

비대면 진료 시 우려되는 점으로는 94%에 달하는 회원이 환자를 충분히 진찰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오진의 위험’을 지적했고 ‘비대면 진료 전문의원의 출현(69%)’, ‘원격의료 관련 플랫폼의 난립(66%)’,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59%)’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각각의 우려에 대한 응답 비율도 지난해 내과의사회 설문조사 결과보다 모두 증가한 경향을 보였다.

박근태 회장은 “불충분한 진찰은 오진의 위험을 높이고 그로 인해 국민의 건강권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며 “산업적 측면에서 추진되는 비대면 진료가 정착된다면 비대면 진료 전문의료기관이 생겨나고 관련 플랫폼 간의 경쟁과 불필요한 의료수요가 증가해 의료영리화의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대면 진료가 도입됐을 때 회원들이 생각하는 진료 범위(복수 선택 가능)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질환이 범유행을 하는 국가 위기 상황에 한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77.9%였다.

이어 ‘도서벽지와 같은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62.4%, ‘장애인이나 거동 불편자에 대해서만 해야 한다’는 응답도 51%로 나와 전면적으로 도입하기보다는 한시적이고 지극히 제한적인 범위로 국한돼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아울러 90% 이상의 회원들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주목할 점은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초진·재진과 상관없이 처방전 발행이 가능해야 한다는 의견이 70%였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50%로 감소했다는 점인데, 이 결과도 비대면 진료가 대면 진료만큼 충분한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회원들이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는 게 4개 전문과목 의사회의 주장이다.

비대면 진료 주체의 경우 1차 의료기관에서 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88.32%였고, 제한 없이 이뤄지거나 2차 이상의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만 시행돼야 한다는 된다는 의견은 11.68%에 머물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원격의료 서비스 관련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바람에 일부 플랫폼 업체들이 뛰어든 비대면 진료 및 건강상담, 의약품 배송에 대해서는 87.5%에 달하는 회원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그중 79%의 회원은 플랫폼과 연계된 전문의료기관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경계했다.

또한 플랫폼 간의 경쟁이 심화돼 환자의 건강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응답도 77%였으며, 초진 환자까지 비대면 진료의 대상에 포함된다면 불충분한 진찰, 의료쇼핑, 약물 남용 등으로 국민건강에 커다란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비대면 진료 제도의 도입에 편승해 정부와 대한약사회가 추진 중인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 구축의 경우 설문조사에 참여한 의사회원 57%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모바일 기기를 통한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의 도입에 대해서는 66%의 회원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박근태 회장은 “전자처방전 전달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국민의 편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대체 조제가 더욱 활성화되고 복약지도가 부실해져 국민건강에 해를 주게 될 것”이라며 “성분명 처방, 만성질환자에 대한 처방전 리필 등으로 이어져 의사와 약사 간의 상호 직역 존중을 전제로 한 의약분업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비판했다.

비대면 진료 관련 입법이 현실화됐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회원은 9%에 불과했다.

게다가 21%의 회원들은 대면 진료만 유지하겠다고 답했고, 향후 우리나라의 비대면 진료 전망에 대해서도 42%의 회원들은 의료취약지 등의 특수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예측했다.

의료 접근성을 고려했을 때 원격의료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26%로 집계됐다.

박 회장은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왔듯이 70% 이상의 내과·소아청소년과·이비인후과·가정의학과 의사회원들은 오진 위험, 의료영리화, 의료전달체계 붕괴 등에 대한 우려로 비대면 진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며 “한시적으로 시행된 비대면 진료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율은 더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대면 진료를 두고 2,500명 이상의 회원들이 신중히 참여한 신뢰도가 높은 결과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정부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참고해 비대면 진료 제도의 도입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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